《우리는 아직 후진국이다. 96년에 난 물난리를 98년 되풀이 해 겪었고 올해 또다시 당했다. 연천 동두천 파주 문산 중랑천 주변 등 서울 및 경기북부 지역의 수재(水災)를 막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모두 합쳐 3000억원. 그러나 3차례의 수재가 앗아간 수십명의 목숨 그리고 수많은 이재민의 고통과 재산피해를 대신할 수 있을까. 이제 인재(人災)는 없어져야 한다. 서울 및 경기북부 지역의 물난리를 막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4차례로 나눠 진단한다》
이번 수해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지역은 경기 연천군. 주민들은 96년에 이어 또다시 피해를 보았다. 96년 수해 뒤 연천군과 경기도, 건설교통부 등은 철저한 수방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연천읍 배수펌프 설치
연천군은 97년 ‘차탄천 하천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에 따라 저지대여서 차탄천의 수위가 높아지면 자연배수가 불가능한 연천읍에 배수펌프장을 설치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하지만 연천군은 40억원 상당의 배수펌프장 설치비용을 마련할 능력이 없었다. 경기도에도 지원요구를 하지 않았다.
결국 연천읍은 96년의 경우처럼 범람이 아니라 차탄천의 물이 하수구를 통해 역류하면서 침수됐다. 군은 4일 연천군을 방문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연천읍 등 4곳에 140여억원을 들여 배수펌프장을 설치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임진강변 제방 축조
96년의 임진강 범람으로 군남면 장남면 등이 침수됐다. 군은 수해 직후 560여억원을 들여 이들 지역에 제방을 축조해 줄 것을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 건의했으나 일부만 받아들여졌다. 임진강 유역에는 농경지는 많지만 주민이 적어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리는데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그러나 98년 5월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 부랴부랴 우정리와 군남면 지역에 제방을 쌓기로 결정, 공사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가까스로 예산을 타내 97년 축조한 장남면 원당1리의 제방에 문제가 발생했다. 제방이 96년 홍수 때 수위보다 낮게 축조된 것이다. 주민들은 당시 여러차례 공사현장을 찾아가 둑을 2m가량 더 높여 줄 것을 호소했으나 ‘쇠귀에 경읽기’였다고 말했다.
★연천댐 폐쇄
주민들은 한탄강 하류지역인 전곡읍 한탄강유원지 등에서 발생한 수해의 직접적 원인은 연천댐의 유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민들은 침수피해가 수습되는대로 96년과 마찬가지로 군청과 댐의 시공사인 현대건설에 연천댐 철거와 피해보상을 요구할 계획이다. 연천군은 96년 수재 직후 경기도에 연천댐의 폐쇄를 요청하고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같은 요구는 댐 붕괴로 인한 수위상승이 3㎝밖에 안된다는 토목학회의 조사를 근거로 무산됐다. 보강공사 역시 98년에야 시작돼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또다시 수재를 당했다.
군은 연천댐을 폐쇄할 경우 철거비용 5억원과 군도 1호선의 교량가설비 150억원 등 2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군청은 5일 현대건설측에 발전소 시설을 폐쇄하고 유실된 양쪽 날개벽에 다리를 놓아 저수 용량을 줄이면서 농업용수 저장기능은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진단 및 대책
주민들은 96년 수해 직후 제기된 수방대책이 제대로 실시됐다면 이번 수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연천군청 관계자도 “백년에 한번 올까말까 한 폭우가 수해의 1차적 원인”이라면서도 “보다 적극적인 방재대책을 수립하고 상급관청의 예산 뒷받침이 충분했다면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한편 서울지방국토관리청 관계자는 “중소규모의 댐을 임진강 유역에 여러개 설치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며 “2002년까지 완료키로 한 임진강 하천정비계획도 앞당길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