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벌총수 견제책으로 올 1월부터 시행중인 개정 상법의 ‘사실상의 이사’조항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삼성그룹 채권단이 삼성 이건희(李健熙)회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하면서 이를 근거조항으로 들고 나와 이회장이 이 조항의 첫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와 채권단 소액주주들이 앞으로 이 조항을 들고 나와 오너의 책임을 묻는 사례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삼성자동차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10일 “개정 상법의 401조2에 근거해 이건희회장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것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상법 401조2는 정부가 추진해온 재벌 개혁의 핵심조항.
‘이사가 아니면서 명예회장 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 기타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명칭을 사용하여 회사의 업무를 집행한 자’를 ‘사실상의 이사’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의 이사가 회사 또는 제삼자에 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을 경우 그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벌 오너가 기업의 이사나 경영진이 아니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선단식 경영을 해오던 것을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다.
금융감독위원회 법무팀 관계자는 “현재로선 재벌 오너의 부실경영 책임을 물어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이 조항이 유일하다”며 “이회장이 등기이사는 아니지만 삼성자동차 경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만큼 이 조항의 적용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한빛은행 유한조(柳漢朝)이사는 “이회장이 출연한 삼성생명 주식이 부채 2조8000억원에 모자랄 경우 제삼자인 채권단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삼성측에서 “삼성자동차 부실경영은 이 법 시행 이전의 일이므로 소급적용이 곤란하다”고 주장하는데 대해 채권단은 “민사상 책임에 대해선 소급 적용이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조항 적용에 있어서 가장 큰 쟁점은 이회장이 삼성채권단에 피해를 줬다는 명백한 사실관계가 입증될 수 있느냐 하는 점. 참여연대 김석연(金錫淵)변호사는 “이회장이 채권은행의 대출에 대한 연대보증이나 상환약속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채권단 손실에 대해 이회장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묻기는 어려우며 이회장만 믿고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