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지금 이곳에선/일본]왕수영/모나지 않게 사는 사람들

입력 | 1999-08-10 18:46:00


혼자 사는 옆집 할머니는 말상대가 없기 때문에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라도 붙들고 얘기를 늘어놓는다.

아침에 꽃밭에 물을 줄 때마다 나에게 하는 말은 정해져 있다.

“뒷집 기무라씨네 부인은 모가 나서 인상이 나빠요. 앞집 나카다씨 부인은 모가 나지 않아서 동네사람들 사이에 평이 좋아요.”

동네 소문을 할머니를 통해 많이 듣게 되는데 주로 아무개는 모가 나서 틀렸다는 말을 자주한다. 옆집 할머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사람이 곧잘 입에 올리는 말이다. 그러니까 일본사람은 모가 난 사람을 싫어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남에게 약간이라도 스치면 금방 ‘스미마센(미안합니다)’이라고 한다. 부딪치거나 스치지 않고 지나치기만 해도 눈을 내리깔면서 ‘스미마센’이라고 한다. 심할 때는 얼굴을 마주치기만 해도 ‘스미마센’이라고 한다.

내가 일본말 중에 제일 먼저 배운 것도 ‘스미마센’이고 일본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도 ‘스미마센’이다. 어떤 날은 ‘스미마센’이라는 말만으로 해가 질 때도 있다. 일본에 왔던 대학생 조카가 ‘스미마센 현상’을 의아스럽다고 했다.

“밖에 나가면 서로 부딪칠 때도 있고 발을 밟을 뻔 할 때도 있지 그걸 일일이 사과를 하면 피곤하지 않을까요?”

일일이 사과를 하고 미안해한다기보다 모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무슨 일에든지 ‘스미마센’이라고 해놓으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일본사람들의 이 ‘스미마센’과 맞먹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절하는 모습이다. 특히 부인들의 절은 헤어질 때 보고 있으면 오늘 중에 작별이 되는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헤어져서 가다가도 돌아보고 절을 한다. 이 끝없는 절도 스스로 모를 깎는 수행이 아닐까 싶다.

일본에 오래 살고 있는 나도 이웃사람을 만나면 절부터 하고 ‘스미마센’을 수십번 되뇐다.

그런 내가 참으로 오랜만에 조국나들이를 하여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나도 모르게 ‘헤아릴 수 없는 절’을 하고 말마다 “미안해”를 연발했다.

“어머나, 너 왜 그렇게 비굴해졌니? 꼴불견이구나. 구걸하듯이 왜 그리 절은 해대니? 일본 살더니 이상해졌구나.” “너 한국 살 때는 당당하고 자신있어 보였는데 무엇이 그리 미안하다고 굽실거리고 그러니?”

나는 친구들의 핀잔을 받으며 한국에서 지나는 동안 ‘스미마센’도 ‘헤아릴 수 없는 절’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북적대는 명동을 걸으면서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동대문시장에서 발을 밟기도 하고, 눈치껏 신호위반도 하고, 검은 립스틱도 바르고, 지하철에서는 엉덩이를 비집고 자리를 차지하면서 나는 당당하고 자신있어 보였다는 옛날의 내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일본에 오래 살았다 해도 나는 한국사람이다. 모가 나고 거칠어지는데는 재빨랐다. 신나고 마음편하던 한국을 떠나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나에게 옆집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 한국가서 앓다가 왔어요?”

이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나는 한국에 다녀와서는 이웃사람을 만나도 절을 하지 않았고 ‘스미마센’도 하지 않았다.

한국에 가서 병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일본의 이웃에게 나는 매일 열심히 절을 하고 ‘스미마센’을 하면서 한국에서 만들어온 모를 깎고 있다.

뻣뻣하고 거칠어진 나를 그들은 병든 사람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왕수영(재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