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유치가 화두이던 지난해 한솔그룹은 독특한 방식으로 외자를 유치, 시선을 받았다.
한솔제지의 신문용지 사업부문을 한솔과 외국의 2개업체가 동일지분으로 참여한 합작사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10억달러를 조달한 것. 한솔은 새 합작사의 대주주로서 신문용지 사업을 계속하게돼 외자 유치 목표를 이룬 것은 물론 신문용지 사업도 유지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합작사 팝코(PAPCO)가 탄생하자 사람들은 기업문화가 전혀 다른 3개 회사가 과연 잡음없이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을지에 관심을 모았다. 8개월이 흐른 지금 팝코의 한 관계자는 “3개 회사가 각각의 장점을 살린 덕택에 각자 최대한의 이득을 얻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윈―윈―윈(win―win―win)〓한솔의 가장 큰 소득은 자금난 탈출. IMF 여파로 경영 위기까지 맞았던 한솔은 매각 대금이 들어와 현금유동성이 크게 좋아졌다. 한솔의 한 관계자는 “매각 대금이 올해말까지 전부 들어오면 부채비율이 150%로 떨어져 그룹 전체 사업구조 재편의 토대를 구축하게 된다”고 말했다.
캐나다측 합작 파트너인 아비티비는 생산거점이 없어 애태우던 아시아에 거점을 마련한 것을 가장 큰 이득으로 꼽는다. 또 캐나다 본사가 자주 파업에 시달려 물량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아시아 지역에서 얼마든지 물량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도 소득.
태국과 한국에 소규모 공장을 두고 있던 노르웨이 노르스케스코그는 한솔과의 정면대결을 피하고 아시아의 리딩컴퍼니에 합류했다는 것이 가장 다행한 일.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팝코의 한국 독립법인 팝코전주는 과거 한솔 시절의 ‘국내기업’에서 ‘다국적 기업’으로 탈바꿈한 뒤 지난달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 주는 능률협회의 ‘월드베스트어워드’를 수상했다.
팝코전주측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게 경영혁신 운동을 펼친 결과로 자평. 상향식 의사 결정, 팀단위의 운영체계 수립, 인센티브 제도 실시 등 기업 문화가 크게 바뀌었다.
선우영석사장은 “한국기업일 때는 최고경영자가 모든 결정을 내렸지만 이제는 3개 업체의 이사가 공동으로 참석하는 이사회가 의사 결정의 핵심기구로 자리잡았다”고 변화의 단면을 소개했다.
팝코전주는 또 내수산업으로만 인식되던 신문용지를 팝코 전체의 수출선을 타고 중남미 동남아 등에 수출하는 실질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이 주체〓팝코전주 PR팀의 고세영주임은 “다국적 기업이긴 하지만 주체는 분명히 한국”이라고 말했다. 팝코의 생산라인 가운데 한국 공장이 생산량과 기술면에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한국측 ‘입김’이 가장 강하다는 것.
지난달 팝코전주의 기획자금팀이 국내 은행들로부터 2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할 때 이같은 ‘힘’이 잘 드러났다. 싱가포르 본사에서는 2억달러를 외국에서 빌릴 것을 요구했지만 기획자금팀은 “한국의 금리가 외국에 비해 크게 높지 않는 한 한국 정부, 은행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한국에서 조달하는게 낫다”는 점을 내세워 뜻을 관철시키는데 성공했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