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섹스주의자들에게」/ 김상태지음/ 이후 /238쪽/ 8,500원
섹스를 주제어로 한 수많은 근간 서적과 이 책을 구분짓는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90년대 한국에 프리섹스는 없다’는 저자의 단정적 표현일 것이다.
너도나도 한국사회의 키워드가 ‘욕망’‘성’이라고 말하는 시대. 그러나 저자는 그 모든 것이 신기루일 뿐이라고 말한다.
처녀작 ‘90년대 한국사회 SEX라는 기호를 다루는 사람들’(96년 출간)로 이미 적잖은 파장을 불러 일으킨 저자. 64년생이며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 한 진보성향의 월간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가 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빼놓고는 성이란 주제에 대해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지를 짐작케 하는 프로필이다. 그러나 저자는 ‘우민화(愚民化)를 위해 섹스산업을 키웠다’는 도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부제가 드러내는 대로 이 책의 목표는 ‘섹스에로의 자유, 섹스로부터의 자유’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두가지 앎이 필요하다고 전제한다.
첫째는 성적 욕망 그 자체와 솔직하게 대면하기.대대로 아름다운 섹스에 대한 문화적 표현들은 ‘소리치고, 희롱하고, 핥고, 물고, 깨물고, 움켜 쥐어짜고, 때리고, 할퀴는’ 것이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그룹섹스나 가학성교가 이른바 정상체위와는 아주 다른 변태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견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
그러나 자칫 성적 급진주의로 읽힐 수도 있는 저자의 주장은 두번째 앎에서 급격히 반전한다. 즉 ‘모든 성적 욕망은 평등하지만 그 실현에는 엄청난 불평등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90년대의 성을 둘러싼 풍경은 “오빠, 오늘 화끈하게 놀아줄 테니까 나 용돈 좀 많이 줘”라고 덤비는 불나비 같은 젊은이들과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부자들의 거래 행위라고 주장한다.
리버럴리스트들은 ‘프리섹스’의 신화를 만들어내지만 실제로 대중에게 주어진 성적 자유란 아무렇게나 성을 팔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됐다는 것 아니면 ‘할부 끊고, 카드 만들고, 마이너스 통장 신청해서’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듯 하룻밤 흥청망청 성적 자유를 구가해보는 것일 뿐이라고, 분석한다.
현실을 속인다는 점에서는 90년대 리버럴리스트와 70,80년대 보수주의자가 한 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비판.
이 책은 딱딱한 학술적 용어 대신 인기영화나 만화의 스토리,소설, 거리의 소녀, 택시기사, 농촌총각, 댄스클럽의 젊은이들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생생한 현실을 움켜 잡기위해 르포와 사회문화비평, 정치적 선전문을 넘나들며 형식과 장르를 해체, 통합하는 발빠른 글쓰기 형식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적잖은 논쟁거리를 남겨두고 있다. 일례로 부자와 다수 서민의 딸 사이에 이뤄지는 성적 거래라는 계급론적 관점은 현재의 성문제를 무리하게 80년대적 틀에 끼워맞추는 것이 아닐까.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