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4주년을 맞아 건국훈장 애족장 수여 대상자로 선정된 송산 김명식(松山 金明植·1890∼1943)선생은 동아일보 창간 당시 ‘논설기자’로 활동한 언론인이기도 하다.
송산선생은 1919년 일본 와세다대 유학 당시 해공 신익희(海公 申翼熙)선생 등과 함께 조선 유학생 학우회를 결성해 ‘2·8 독립선언’을 주도하는 등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제주 북제주군 출신인 송산선생은 동아일보 창간 당시 ‘논설반 기자’로 활약하며 창간호에 ‘새봄’ 등 축시 2편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는 동아일보에 재직중이던 1920년 6월 설산 장덕수(雪山 張德秀)선생 등 50여명과 함께 ‘조선청년연합회 기성회’를 발족시켜 항일 청년운동의 불을 지폈다.
그는 1922년 월간지인 ‘신생활’창간에 참여했으며 그해 12월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글을 게재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한 뒤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송산선생은 외부기고가로서 1941년 4월1일부터 동아일보에 ‘제1차 세계대전 후 세계사’라는 글을 7회에 걸쳐 연재하기도 했다.
그는 “나라를 찾기 전에는 사망신고도 하지 말고 내 무덤에 비석도 세우지말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주보훈지청은 올6월 훈포장 신청을 하면서 사망신고가 안된 사실을 확인하고 직계가족을 수소문했으나 찾지못했다. 이에 따라 보훈지청이 대신 사망신고를 했다.
〈제주〓임재영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