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방송사의 보도국장실. 국장이 직접 TV 3사 뉴스 프로의 시청률을 빼곡이 적어놓은 수첩을 펴보인다.
“이게 성적표입니다. 여기에 모두 목매달고 있어요. 시청률이 높은 뉴스 아이템이 앞으로 배치되기도 하고….”
이같은 장면은 드라마나 교양 오락프로 쪽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매일 아침 일선 PD에서 고위 간부에 이르기까지 1분마다 촘촘히 나와 있는 시청률 조사결과에 울고 웃는다.
그 저울이 얼마나 정확할까? 결론부터 말해 정확성이 의심스럽다.
91년말부터 시청률을 조사해온 미디어서비스코리아(MSK)에 이어 올해 6월말 TNS미디어코리아가 시청률 조사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양사의 조사결과가 크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현황은?◆
7월16일∼8월10일 양사의 자료를 비교해보자
. MSK의 1위는 36.2%의 시청률을 기록한 SBS의 수목 드라마 ‘해피투게더’인데 비해 TNS의 1위는 24.7%의 SBS 오락프로 ‘김혜수플러스유’로 나타났다. ‘해피투게더’는 TNS자료에서는 22.4%로 3위이고 ‘김혜수플러스유’는 MSK에서 3위. 10위 이내의 프로그램 중 4개 프로의 순위가 달랐다.
개별 프로도 조사 기관에 따라 최대 12.2%포인트까지 차이가 났다. 7월29일 방영된 KBS1의 ‘스포츠뉴스’는 26.9%(MSK)와 14.7%(TNS)로 달랐고 7월18일 방영된 MBC 특선영화 ‘택시’도 25.5%(MSK)와 16.2%(TNS)로 9.3%포인트나 달랐다.
◆원인은?◆
MSK와 TNS 양사는 이 차이를 아직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민경숙 TNS미디어코리아 대표는 “조사 가구수는 300가구로 같으나 조사 채널 수나 조사대상가구 관리, 표본추출과정, 자료 분석 방식 등이 다른 게 원인인 것 같다”며 “양사 경쟁 체제 하에서 어느 쪽 조사결과가 정확한지는 소비자인 방송사나 광고주들이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다.
양사의 조사 방식은 조사대상 시청자가 리모컨처럼 생긴 특정 기기에 연령 성(性) 채널 등을 입력하는 것으로 비슷하다.
그러나 방송사 등에 자료로 제공되는 ‘1분 시청률’에 대한 정의가 달라 조사결과에 차이가 날 수 있다. MSK는 15초 이상 볼 경우 ‘봤다’고 기록하는데 비해 TNS는 1분간 가장 많이 본 채널을 기록한다.
한편 TNS는 조사대상을 9월초에 수도권은 500가구로 확대하고 9월말부터는 서울 외에 부산 대구 광주 대전으로 지역을 넓혀 모두 1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대안은?◆
양쪽의 시청률 조사결과가 크게 엇갈리자 방송사는 물론 한국방송광고공사와 광고주들이 술렁거리고 있다. 시청률에 따른 ‘광고요금 연동제’를 연내 시행할 예정인 방송광고공사측은 “이렇게 서로 다르면 시청률의 허구가 드러나는 게 아니냐”면서 “외국처럼 시청률을 검증할 수 있는 제삼의 공인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 조사는 인구를 감안하더라도 조사대상가구부터 선진국과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오차가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은 4500, 영국은 4400, 독일도 4400, 프랑스는 2000 가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시청률조사기구와 검증기관이 따로 있어 시청률조사의 객관성을 기하고 있다.
◆질적 평가도 있다◆
시청률만이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는 아니다. 정보와 ‘감성’ 등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따지는 질적 평가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질적 평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KBS는 95년부터 한국언론학회와 공동으로 공영성지수(PSI·Public Service Index)를 수년째 개발 중이나 아직 현장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방송위원회도 94년부터 질적 조사의 하나로 AI(Appreciation Index)조사를 실시했으나 98년 이후 예산삭감으로 중단했다.
〈허 엽기자〉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