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마법’의 빠진 주인공들에게는 그래도 몽환의 아름다움이라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 마법’에 걸려든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움, 지겨움, 게다가 분노의 감정만 터져나올 뿐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국가보안법 개정의지에 대한 정당들의 입장 차이가 너무나 뚜렷하다. 찬양고무죄와 불고지죄는 폐지하고, 반국가단체의 개념을 수정하고, 일반범죄자보다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한 특칙도 손질을 하자는 것이 국민회의의 개정안이다. 여기에 대해 한나라당은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완강한 입장이고, 자민련은 기본골격은 지켜야 한다는 애매한 태도이다.
▼국보법 정략적 이용▼
여하튼 국민회의를 제외하고는 일치단결해 국가보안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그것도 전면 폐지도 아닌 극히 부분적 개정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 나라가 곧 적색의 바다에 좌초하리라는 듯한 근심스런 표정으로. 그러한 거부가 이 땅 보수주의의 상징격인 국무총리와 공안검사의 경력을 지닌 한나라당 대변인 같은 사람들의 개인적 몸짓이라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에게는 그들이 마법이 걸린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시대착오적 마법에 걸렸다. 마녀사냥은 옛날의 일이고, 매카시즘 선풍이 지나간 것도 이미 반세기 전이다. 그럼에도 밀레니엄 운운하는 지금 이 순간에 그런 망상의 잔재를 정치적 도구로 삼으려 한다. 보수적이지 않은 것은 붉은 색과 동맹을 맺고 있다는 애처로운 신념은, 마치 노을빛에도 금수강산과 돈과 행복이 다 날아가버릴 듯이 떠든다.
그들은 전쟁의 마법에 빠졌다. 6·25를 경험했는냐고 호령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무력 숭배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전시의 긴장된 분위기만이 평화를 지속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또 하나의 신조가 된다. 전쟁의 공포와 피해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반문한다. 국가권력에 의한 전체주의적 탄압이 개인을 파괴한 참상과 그 고통의 무게를 아느냐고. 그들은 정치적 마법에 홀렸다. 특별검사제 논쟁에서도 느낀 바 있지만, 야당은 여당에 반대함으로써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듯하다. 그러니 만약 정부와 여당이 국가보안법의 유지 또는 강화를 주장했다면 야당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공상까지 해 본다. 그들은 서해 연평도 서북방에서 일어났던 남북한의 무력충돌을 이야기한다. 국민들은 모든 언론이 맹렬히 보도한 교전상태의 상황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 원인이 된 북방한계선의 존재와 주장의 국제법적 타당성에 관한 현실의 진실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여론은 개폐론 지지▼
간첩인 사실을 아는 데도 신고할 의무를 없애버리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것은 그들의 외침이다. 정말 피부에 와닿는 구체적 예다. 그러나 그들에게 시민이 살인범을 보고도 지냐쳤을 경우 범인은닉죄가 되지 않는다는 형법상 논리를 설명해야 할까. ‘의무’와 ‘형벌’은 반드시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안보를 걱정하는 국회의원 모임’에 의제를 하나 제공할까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체제를 지켜온 것이 국가보안법인지, 아니면 그 폐지를 위해 싸워온 힘인지를 토론해 보기 바란다. 나는 그들에게 문제도 하나 내고 싶다. 예를 들어 지금 누구나 1000원짜리 지폐 몇 장만 있으면 전국 어느 서점에서나 구입 할 수 있는 시집 한 권이 책상 위에 꽂혀 있었다는 이유 때문에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런 현상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만약 성공한다면 마법에서 깨어난 것으로 인정하겠다.
김대통령은 지난 달 미국 방문중 국가보안법의 폐지 또는 대체 입법을 거론했는데, 지금의 개정안으로 움츠리고 만 것은 여론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여론이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각 기관에서 한 설문조사의 결과는 압도적으로 개폐론이 우세했는데, 그것은 여론이 아니고 무엇인가. 진정으로 바라건대, 여론을 무시하고 사면을 감행한 기개로 국가보안법을 다루어 주기 바란다.
차병직(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