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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출판통신/파리에서]조혜영/'우연' '앙골리 말라'

입력 | 1999-08-20 18:47:00


프랑스에서 이 시대의 가장 은밀하며 파악하기 힘든 작가로 알려진 르 클레지오(59). 최근 ‘우연’과 ‘앙골리 말라’, 두편의 신작소설을 한권의 단행본으로 펴냈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곧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해 프랑스인들의 르 클레지오에 대한 변함없는 열광을 확인시켜 주었다.

르 클레지오는 정복자들이 파괴한 문명의 복구를 묘사한 ‘성스러운 세 도시’(80), 인디언의 입장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생각하는 ‘멕시코의 꿈’(88) 등의 작품을 통해 “사라져가는 문명의 유적을 찾아나선 대탐험가”라는 평을 얻어왔다. 프랑스 본토가 아닌 인도양의 프랑스 식민지 모리셔스에서 태어난 르 클레지오에게 도시는 ‘영원한 타향’일지도 모른다.

두편의 신작도 앞선 작품처럼 유럽문명에서 벗어난 낙원에의 향수를 그리고 있다.

‘우연’의 주인공 후앙 모구에르는 58세의 나이에 직업적 명성과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세계일주 항해를 시작한다. 아내는 절대적 자유를 찾겠다는 남편을 떠나가고, 딸도 그와의 바다여행을 거부한다. 후앙의 유일한 길동무는 흑인 항해사.

어느날 그의 배에 몰래 올라탄 열두살의 혼혈 소녀 나시마는 고독한 항해의 동반자가 된다. 나시마는 엄마와 자신을 두고 바다로 떠나버린 서인도제도 출신 아버지를 찾아 모험길에 오른 아이.

‘앙골리 말라’는 인디언 브라비토와 흑인과 인디안 사이에 태어난 혼혈여인 니나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그들의 꿈이 서구인에 의해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브라비토는 세살때 고아가 되어, 흑인 목사의 도움으로 파나마에서 교육 받았지만 원주민으로서의 삶을 되찾기 위해 자신이 태어난 원시림으로 돌아온 인물.

두 작품은 서구문명으로부터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원시의 극단적 고독을 선택한 인물의 투쟁과 운명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진실한 아름다움에 굶주린 이들은 정치적, 철학적 이상이 아닌 바다와 섬, 숲과 강 등의 시적인 우주를 호흡하고 싶어한다.

이 작품들이 프랑스 독자들을 사로잡는 가장 큰 이유는 인류문명의 최후 보루로서 순수한 인간애(人間愛)를 일깨우기 때문일 것이다.

조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