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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룡의 환상세계]패러디가 죽을 쑤는 이유

입력 | 1999-08-22 19:00:00


개봉 1주만에 스타워즈를 누르고 흥행 1위를 차지, 전 미국인을 놀라게했던 영화 ‘오스틴 파워(The Spy who shagged me)’.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개봉 초기에는 호기심 때문에 사람이 꽤 몰렸지만,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오스틴 파워가 천박한 삼류 코미디 영화로 보여서일까. 확실히 오스틴 파워는 허리 아래를 물고 늘어지는 섹스 난센스들을 질펀하게 펼친다.

여성을 육체 밖에 없는 저질로 묘사하는 등 거북한 편견과 조롱도 난무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 영화가 패러디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부터가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패러디다.

오프닝 자막과 내러이션은 ‘스타워즈’를 흉내냈고, 007시리즈를 비롯한 여러 영화들과 미국적 대중문화 코드들을 비벼댔다.

패러디 영화의 정수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패러디 영화에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패러디를 잘 해도 윌 스미스가 아들과 함께 출연한 랩 비디오 ‘Just The Two Of Us’를 본 적도 없고, 록그룹 앨런파슨스 프로젝트나 트리오 바나나라마를 잘 모르는 우리 나라 사람에게는 썰렁한 농담으로 비춰진다.

역시 패러디는 친숙한 것을 소재로 삼을 때 재미있는 것이다.

몇 년전 우리나라에서 ‘먹통X’라는 패러디 만화가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외계에서 침입해 온 외계인을 무찌르기 위해 ‘먹통X’가 출동하려 한다. ‘야, 출동할 필요 없어. 지구 방위군이 다 해치웠데.’ 마징가Z나 로봇태권V의 패러디다.

그러나 ‘먹통X’이후로 이렇다할 패러디 만화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패러디가 성공하기 위해선 오리지널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소재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패러디 할 수 있는 소재는 ‘쉬리’정도에 그친다는 것이 우리 대중문화의 현주소이다.

김지룡〈신세대문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