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전 한국은행이 장밋빛 낙관론을 펼쳤다. 그간 신중했던 한은인지라 머리가 갸우뚱해진다. 발표된 겉모양만을 보면 그럴싸하다. △생산과 부가가치가 늘었고(금년 2·4분기 9.8% GDP 성장) △실업이 줄었으며(1·4분기중 8.4%에서 6월에는 6.2%) △무역 및 무역외 수지가 흑자를 지속하고 있고(금년 2·4분기 64.4억달러) △물가가 크게 안정되었으며(소비자물가가 작년 2·4분기 8.2%에서 금년 2·4분기 0.6%) △유동성은 줄었으나 금리는 낮아졌고 △부도업체가 줄고 어음부도율이 낮아졌고 △환율이 안정됐고 가용외환보유고도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韓銀 장밋빛 경제전망▼
이러한 거시경제지표의 개선이 이어지면서 앞으로도 계속 소비 설비투자 등 내수가 높은 증가세를 보일 것이고 수출물량도 건실하게 늘어나 고용이 늘고 경상수지 흑자도 연말경 200억달러나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연 그럴까. 과연 그런 낙관론을 지금 이때 발표해도 좋을지 의문이며 걱정된다. 항간에는 벌써 소비 투자 수출이 모두 살아나 질적으로 개선됐으며 제조업이 20%나 성장해 11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가슴뿌듯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반면 이는 과열 신호며 금융불안과 소득분배 악화, 국민실질소득 감소, 교역조건 악화 등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고 겨우 재고순환상 경기회복의 초입 단계에 불과하다는 신중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교연도와 생산 및 수출 주도산업 및 한국경제의 실체를 어떻게 보는가에 시비의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비교연도의 문제다. 모든 지표가 가장 나빴던 작년 2·4분기와 비교하면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전과 비교하면 이제 겨우 그 수준으로 회복된 데 불과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히 또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른다. 사실 IMF 전에도 거시경제지표 등 근본이 튼튼했다고 믿었고 이를 너무 과신해 남의 돈을 마구 꾸어 부실하게 덩치를 키운 것이 화가 되어 외환보유고에 구멍이 생겼다. 이것을 빌미로 IMF가 숨통을 조이고 그래서 긴축하다보니 여러 지표가 나빠진 것이다. 이것이 겨우 지금와서 원상 회복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된 것은 그간 정책당국도 고생했지만 국민과 기업의 끈질긴 생명력 때문이라 보면 된다. 과열도 아니고 과속도 아니다.
이쯤에 이른 것도 모든 산업 경기가 나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동차 컴퓨터 등 몇 개 산업이 주도한 것이고 수출시장이 운좋게도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었다고 봐야 한다. 생산과 고용이 늘고 있는 것은 자동차도 전자도 은행도 유통도 땅도 건물도 외국에다 헐값으로 팔기 때문임을 잊어선 안된다.
▼개혁은 소리만 요란▼
무엇보다 IMF체제 전과 비교해 아직 나아진 게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기업구조조정 금융구조조정은 그간 수십조원의 나랏돈을 쏟아 넣어 빚더미를 메우는 일을 했을 뿐, 또 겉모양만 떼다 붙였을 뿐 아직도 스스로 경쟁력있게 수익성과 경제성을 높이는 관리운영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돈 때문에 일어난 IMF체제인데도 돈시장이 지금도 격동하고 있다. 과학 기술은 더 나빠지고 있다. 이럴 때 장밋빛 환상을 바탕으로 중도에 손을 떼거나 이만하면 되겠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때 바로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며 IMF 이전으로 되돌아 가게 된다.
나아가 정치도 정부도 공기업도 법도 교육도 사람들의 의식도 아직 나아진 것이 별로 없다. 정치는 싸움판이며 나쁜 짓 다하고도 책임지지 않는다. 정부의 개혁, 공기업의 개혁은 소리만 요란했지 열매가 없으며 법과 교육개혁은 손도 못댄 채 이미 물건너갔다. 사회와 사람의 의식에도 변화의 조짐은커녕 하루하루 뉴스의 태반이 악으로 가득 차 있다. 고비용 저효율 차입 부실경영이 경쟁력있고 수익성있는 기업 경제 사회로 전환되어야 하는 데도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이럴 때 장밋빛 경제전망을 내놓는 건 위험천만이다. 꼭 지난 정권 때 신경제 세계화 선진국진입론을 부르짖던 것이 연상된다. 한국 경제는 아직 ‘장미경제’가 아니라 ‘콩나물경제’다. 꼭 일일 연속극을 보는 것만 같다.
박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