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00년 새해 아침까지는 꼭 128일 남았다. 새로운 천년을 눈 앞에 두고 20세기 마지막 해넘이와 21세기 첫 해돋이를 어디에서 맞을 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여행레저팀은 ‘굿모닝레저’에서 일출 일몰이 장관인 명소를 찾아 연재한다.》
뜨는 해는 그 모습이 힘차다. 그래서 뜨는 해를 보면 함성이 터진다. 지는 해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첼로의 울림통속에 사라지는 연주음의 가녀린 여운처럼 애잔하다.
국립공원 변산반도 서쪽의 해안단층지대 채석강(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수천 수만권의 책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한 이 퇴적암층 단애(斷崖)는 억겁의 세월에 밀물과 썰물로 빚어진 것이다. 그 이름은 중국의 시성 이태백(李太白)이 뱃놀이 도중 물에 비친 달 모습에 반해 달을 따려고 뛰어들었다가 죽었다고 전해지는 채석강(彩石江)에서 따 온 것이다.
그 비경의 바위해안이 서해 낙조의 붉은 빛에 살포시 물드는 오후 7시반 전후. 수선스럽던 바닷가는 이내 적막에 싸인다. 잔잔한 바다위로 사부작 사부작 내려 앉는 태양의 안착을 목도하려는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춘 덕분이다.
이즈음 석양빛에 물드는 것이 어찌 채석강 바위 뿐일까. 흰 구름도, 사람들 눈동자도, 갈매기의 부리까지도 발갛다.
해질 녘 채석강 바다는 바닥을 드러낸다. 썰물이다. 온종일 물속에 잠겨 있던 바위가 제 모습을 내 보이는 때다. 그러면 사람들은 한가로이 그 바위로 산책을 나온다.
석양에 물든 바닷가에서 소주 한 잔을 걸치며 즐기는 낙조감상도 운치있다. 채석강 옆 격포항의 방파제가 제격이다.플라스틱통의 바닷물에 담은 싱싱한 해물을 즉석에서 요리해주는 포장좌판 10여개가 100여m 늘어서 있다.
소줏잔까지 석양에 물들 즈음이면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시심이 동해 시를 한 잔 술의 안주거리로 삼고 싶어진다.
수평선 너머로 비치는 붉은 빛이 사방에서 사라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여분. 방파제 끝 하얀 등대의 불빛이 점점 또렷해지면 격포항은 어둠에 싸인다. 그리고 일몰에 상기된 사람들은 싱싱한 생선회가 기다리는 횟집타운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이용. △서울∼대전∼신태인IC∼부안∼변산 305㎞(4시간소요)△광주∼정주∼변산 119㎞(1시간50분 소요)
〈변산〓조성하기자〉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