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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변호사 강제주의 도입]돈없으면 재판 포기할판

입력 | 1999-08-26 19:55:00


【2,3심 재판시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하는 ‘변호사 강제주의’가 대법원의 민사소송법 개정시안에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재판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고 법률지식이 없는 소송 당사자에게 법률자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비싼 변호사 수임료 때문에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당할 수 있다”고 반대한다.】

변호사 강제주의는 취지 자체만을 보면 그럴듯 하지만 한국의 사법 현실과 견주어 보면 문제점이 많다.

현재 소송 당사자의 70% 이상이 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변호사 강제주의가 도입되면 항소심 상고심의 경우 변호사 없이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 결국 소송 당사자가 아니라 법조인을 위한 제도로 변질될 게 분명하다.

이 때문에 개인의 서비스 선택권이 침해당할 우려가 있다. 변호사 선임여부는 당사자의 자유사항이지 국가가 강제할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

또 경제적 이유로 재판을 받지 못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다. 한국의 변호사 보수는 독일보다 10배나 비싸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조사에 따르면 민형사 사건의 수임료가 평균 500만원선으로 나타났다. ‘국선 변호사’제도가 있어 문제가 없다지만 이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연방변호사보수법’으로 통제하기 때문에 수임료가 합리적인 수준이다. 한국은 대한변협이 규칙으로 보수를 정할 수 있는데 2000년부터는 자율화돼 변호사 마음대로 받을 수 있게 된다.

예술가 저작자 발명가 과학기술자의 지적재산권 보호도 문제다. 이들의 권리는 전문지식이 없는 변호사보다는 특허소송 전문가인 변리사 등 다른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것이 더 타당하다.

새 제도에 앞서 법학전문대학원 설립 등 법조인의 전문성 강화 및 자질향상을 위한 법학교육의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변호사 자격시험제도로 전환해 법조인 수를 대폭 늘리고 과다 수임료를 막기 위한 법도 만들어야 한다.

소액 재판은 평균 42초밖에 안걸릴 정도로 초고속이다. 단독재판 합의재판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법원은 소송당사자가 무조건 상소해 재판업무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판사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근본 원인이다. 50년 전에 비해 판사수가 2.5배 늘어난데 비해 소송건수는 21배나 늘었다. 개인의 재판청구권이 법조인의 이익이나 법원의 재판편의 때문에 제한될 수는 없다.

김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