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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로씨 살인-인질현장]31년전 그때 그자리 '함성' 생생

입력 | 1999-08-26 20:14:00


재일동포 무기수 김희로(金嬉老)씨의 운명을 바꾼 살인과 인질사건의 현장은 31년이 지난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김씨가 68년 폭력단 간부 2명을 총으로 살해한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시미즈(淸水)시의 나이트클럽 ‘밍크스’. 시청에서 200여m 떨어진 유흥가 중심의 5층 짜리 건물 외벽은 사건당시와 똑 같이 희고 가는 판자와 둥글고 흰 단추 모양의 금속으로 장식돼 있다.

사건 이후 이곳은 주인과 상호를 바꿔가며 영업을 계속해 왔지만 ‘김희로사건’의 현장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건물 입구 왼쪽 벽면에 ‘클럽 밍크스’라는 상호를 금속으로 만들어 붙였던 자국이 아직도 뚜렷하다.

‘밍크스’는 시미즈 시민 중 40대 이상은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시미즈역 앞에서 찻집을 경영하는 나카무라 마스미(中村ます美·41·여)는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시고도 밍크스에서 마셨다고 할 정도로 누구나 가 보고 싶어했던 곳”이라고 말했다. 밤에는 현란한 네온사인을 켜는 곳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이 건물은 최근까지 ‘퀸’이라는 이름으로 영업했으나 대장성에 압수당해 경매물건으로 나와 있다. 고급승용차가 줄지어 있던 건물 안 주차장은 어른키만큼 자란 잡초로 덮여 있다. 김씨가 달아나 인질사건을 벌였던 하이바라(榛原)군 혼카와네(本川根)정 스마타쿄(寸又峽)온천마을의 후지미야(ふじみ屋)여관도 여전히 영업중이다.

후지미야 여관까지는 시미즈시에서 전철 기차 버스를 차례로 갈아타고 3시간 정도 걸린다. 전형적인 산골마을이어서 아찔할 정도로 깊은 계곡에 걸려 있는 다리와 긴 터널을 열 곳 이상 지나야 한다.

김씨는 총과 다이너마이트를 갖고 이 여관 2층 방 ‘기리(桐·오동나무)’에서 88시간 경찰과 대치했다. 여관 주인의 가족 6명과 손님 등 인질 18명은 옆 방인 ‘후지(藤·등나무)’에 몰아넣고 감시했다. 방 이름은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다.

지금 이 여관을 운영하는 사람은 이틀간 인질이 됐던 모치즈키 히데코(望月英子). 사건당시 29세의 젊은 안주인이었던 그녀는 이제 60세. 1남2녀의 자녀로부터 7명의 손자를 둔 할머니가 됐다. 마지막까지 인질이 됐던 남편은 6년전 60세로 타계했다.

사건후 많은 사람들이 여관을 구경하러 왔지만 무섭다며 묵으려고는 하지 않아 영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녀는 김씨를 용서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박삼중(朴三中)스님이 4번이나 찾아와 김씨가 가석방되면 함께 인사하러 오겠다고 했다”면서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마음 깊은 곳에 갈등 같은 것이 남아 있을까.

그러나 그녀는 김씨를 사실상 용서했다. 그녀는 김씨가 체포된 뒤 여관비로 써 달라며 풀어준 세이코 손목시계를 줄곧 보관해오다 올 1월 삼중스님에게 맡겼다. 김씨가 출소하면 돌려주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일부러 잊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세월과 함께 자연히 사건의 아픔도 잊게 됐다”고 말했다.

〈시미즈·혼카와네〓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