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체계' 장 보드리야르 지음/배영달 옮김/백의 펴냄/336쪽 10.000원▼
“콜라를 마신다는 것은 검은 액체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청량감과 젊음을 마시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회이론의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인 프랑스의 지성 보드리야르(전 파리10대학 교수). 그는 사물이 개별적으로 고유한 의미를 갖는다기 보다 체계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콜라는 콜라 자체로 교환가치나 사용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콜라가 속한 관계 속에서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갈증이 나는 미국 소녀와 배탈이 난 한국 할아버지에게 콜라 한 병이 주는 청량감과 젊음의 가치가 같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사물을 이야기할 때 기능이나 용도를 중심으로 보지 않는다.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묻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은 그 기능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소비한다.
값싸고 실용적인 ‘마티스’승용차를 놔두고 왜 그 비싸고 커다란 ‘그랜저’승용차를 타고 다니는가? 안전해서? 그건 부차적인 변명이다.그들은 ‘안전’을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비싼 차에 담겨진 사회적 ‘권위’를 타고 다닌다. 우리가 눕는 곳은 침대가 아니라 ‘과학’이고 주방에 놓인 것은 커다란 냉장고가 아니라 중산층 가정의 ‘여유’다.
자본주의 사회는 현란한 광고와 미디어 등을 통해 이 ‘권위’ ‘과학’ ‘여유’에 대한 욕망을 만들어 내고 그 욕망에 따라 상품은 소비되고 생산된다. 상품이 생산됨에 따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가 생산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사회의 기호학’을 펼치고 있는 저자는 현대 사회를 ‘소비사회’라고 지칭한다. 소비가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한 원동력이며, 나아가 ‘소비주의’가 일상의 다양한 측면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내는 욕망에 따라 소비한다. 욕망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면 ‘과소비’라는 말은 모순이다. 따라서 끝없이 욕망에 대한 만족을 추구할지라도 남는 것은 공허함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68년에 발간된 이 책은 70년 발간된 ‘소비사회’(문예출판사)를 설명해 내기 위한 구체적인 사물의 분석이다. 보드리야르의 저술 대부분이 국내에 번역 소개됐지만 이 책이 초역됨에 따라 그의 이론이 딛고 있는 사물 인식의 체계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됐다. 허공에서 노닐고 있는 듯한 그의 후기저작을 보다가 좌절하기 전에 먼저 ‘소비사회’와 함께 이 초기저작의 구체적인 분석방법을 공들여 읽어 볼 만하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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