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계좌를 이용하는 등 국제적 돈세탁 과정을 거친 러시아의 거액 유출 사건은 12월 총선거와 내년 6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러시아 정계에서도 큰 쟁점이 될 것 같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 일가와 측근의 연루설이 사실로 판명되면 정권 재창출을 기도하는 옐친 진영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반(反)옐친 진영이 대대적인 공세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돈세탁 연루혐의를 받고 있는 옐친의 측근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로고바스그룹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일간지 노보예 이즈베스티야는 위기감을 느낀 듯 27일 ‘음모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 신문은 “최근 8년 동안 3500억달러(약 420조원) 가량의 러시아 자금이 해외로 유출됐으나 그 가운데 범죄와 관련된 자금은 10% 미만”이라며 “러시아에서 거의 일반화된 자금 해외유출이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일부 세력의 음모가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에서는 범죄조직인 마피아뿐만 아니라 기업인과 일반인들까지 돈을 해외로 빼돌리고 있다. 영국의 신용평가회사 피치IBCA는 최근 보고서에서 93∼98년 사이 1360억달러(약 163조2000억원)의 돈이 러시아에서 외국으로 유출됐다고 추정했다.
러시아 정부는 개인이 하루 2000달러 이상 해외로 송금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 자금 유출을 알선하는 브로커가 많은데다 미국 스위스 영국 등 서방 은행들이 자금 유치에 혈안이 돼 있기 때문.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27일 “서방은행들이 영업방침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러시아 자금은 계속 해외로 유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희성·김기현기자〉lee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