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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무연/비아그라 복음인가 재앙인가

입력 | 1999-08-30 19:16:00


남성의 신체적 ‘퇴락’(頹落)은 40대부터 서서히 시작된다. 노안(老眼) 심폐기능의 저하, 근육 소실에다 골(骨)조직 붕괴로 키마저 줄어든다. 이러한 변화는 성기능의 쇠퇴에 비하면 그리 견디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40세 이후면 고환이 수축돼 정자 생산이 줄어들고, 사정거리는 청년기의 60㎝에서 노년기에 이르면 13㎝로 짧아진다. 페니스 동맥이 노후되면서 발기력도 떨어져 옛날과 같은 단단함은 찾기 힘들다.

▼고개숙인 남성 희색▼

의학계에서 만든 말로 바이로포즈(viropause)라는 용어가 있다. 정력의 종말이라는 뜻이다. 요즘엔 남성에게도 여성처럼 폐경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 분기점을 성 수행능력의 급격한 저하로 보는 것이다. 의사와 약사들의 지루한 힘겨루기 끝에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드디어 10월초부터 시판된다. 여성들처럼 은연중 폐경기를 불안해 하던 남성들에게는 복음이 될 것같다.

성기능 감퇴는 어떤 신체적 노화보다도 남성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준다. 정력의 종말, 남성의 종말을 뜻하기 때문이다. 비아그라가 남성들을 들뜨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한 발기장애 치료제로써가 아니라 이렇게 남성의 자존심과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남성의 존재 이유가 꼭 성이어야만 할까. 자연인류학자들은 이러한 ‘집착’을 진화에서 찾는다. 남성은 사람 몸집의 세배인 고릴라보다 훨씬 큰 음경을 가졌다. 고릴라는 수컷이 암컷보다 몸집이 두배나 크다. 고릴라는 암컷을 지배하는데 이렇게 큰 생식기가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장류는 암컷의 선택에 의해 생식기가 진화했다고 생각된다. 성적으로 자극적인 모양과 강한 힘을 자랑하는 생식기가 암컷에 의해 선택되고 그 덕에 자신을 닮은 자손을 지구상에 더 많이 남겨 진화를 주도한다는 것이다. 발정기의 침팬지 암컷이 수컷의 축처진 생식기를 꼬집고 조롱하는 것은 암컷에 의해 종이 선택되는 좋은 예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이렇듯 남성에게는 ‘여성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진화론적 불안이 잠재해 있다. 남성이 성기로 여성을 지배하고 군림하려 드는 것이 이렇듯 DNA에 각인된 시나리오를 위장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성의 진화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기념비적인 변화는 특정한 시기에만 섹스를 하는 발정기를 벗어버렸다는데 있다. 언제든지 관계할 수 있다는 것은 섹스가 생식 목적이 아니라 쾌락의 수단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의 진화는 현대로 오면서 과학으로 다시 맥이 이어진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여성의 성 해방을 족쇄로 채운 것은 임신에 대한 공포였다. 그리고 사회는 여성의 행동규범을 모성(母性)으로 포장했다. 그러나 60년대 경구피임약과 효과적인 자궁내 피임장치들이 개발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여성 성해방의 물꼬가 트이면서 개방된 성문화가 창출된 것이다.

▼性윤리 붕괴 예고▼

밀레니엄, 새로운 한 세기의 시작을 우리는 남성들의 성혁명으로 시작할 것 같다. 비아그라는 성을 즐길 수 있는 나이의 제한을 풀어준다. 그것은 자연의 진화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였다. 비아그라는 중노년 남성들에게 젊음을 포기하지 말라고 속삭인다. 비아그라는 성풍속의 변화는 물론 성과 관련된 산업의 번창, 기존 성윤리의 붕괴도 예고하고 있다.

비아그라는 아직 인류가 추구하는 완전한 약은 아니다. 비아그라의 문제는 약효가 전신(全身)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성욕이 있어야만 효과가 있는 점, 복용후 1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는 지연성 등이다. 그러나 이미 이런 한계를 극복한 신약들이 미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의약품 개발은 돈이 되는 쪽으로 빠르게 진화한다. 비아그라가 한해 벌어들인 돈이 무려 10억달러이니 그 매력을 기업들이 놓칠 리가 없다.

우리는 이제 과학이 주도하는 성과 성문화의 진화 속에 살고 있다. 스위치를 켜듯 간단하게 발기를 도와주는 약물과 기구, 인체 접촉이 없어도 쾌락을 즐기는 사이버 섹스, 유전자를 조작해 발기부전을 치료하는 시대를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인류에게 축복인지 재앙인지 몰라도 비아그라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무연(굿모닝남성비뇨기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