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사 바로세우기’논란과 관련해 ‘초(超)고대사 복원운동 수준에서 실험과학 수준에까지 와 있는 현대 역사학을 멋대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가톨릭대 박광용교수의 주장(25일자)에 대해 한신대 철학과 김상일교수가 역사학의 실증주의적 방법론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의 반박문을 보내 왔다》
★정확-확실에 얽매여
철학하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 한국의 사학자들은 ‘데카르트의 불안’(Cartesian Anxiety)이라는 병에 걸려 있는 것 같다.
‘데카르트의 불안’이란 리처드 베르스타인이 한 말로서 정확, 확실, 분명한 객관적 실재를 붙잡으려는 불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데카르트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자료와 정보가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여기게 된다. 지금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려는 한국 사학자들의 불안은 데카르트의 불안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불확정성 이론,상대성 이론, 카오스 이론, 복잡성 이론과 같은 신과학의 등장은 ‘데카르트의 불안’의 정체를 와해시키고 말았다. 그 주된 원인은 관찰 주관이 객관 대상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주관부터 검증해야
마찬가지로 역사학자 역시 자기가 다루려는 역사적 자료 밖에 서 있을 수는 없다. 과학자는 객관적 자료를 검증하기 전에 자기 주관을 먼저 검증해야 하고 사학자는 자기 사관을 먼저 객관화시켜 검증해야 한다.
인간의 주관은 상상력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하이젠베르그는 과학적 발상이 문학적 상상력과 같고, 결국 과학의 언어와 문학의 언어는 불가분리적이라고 보았다. 로티가 철학을 문학평론 이상으로 보지 않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 사학계는 역사의 실증성과 객관성에 집착한 나머지 저자미상 연대미상이란 이유로 우리 고사서들을 위작 혹은 위서로 매도하고 있다. 수 세기전 기독교 성서학자들도 실증주의와 합리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성서 66권을 저자미상과 연대미상이란 이유로 위서로 매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양식사(樣式史)학파가 나타나 양식비판을 통해 성서의 ‘문제성’을 부각시키는 데 금자탑을 세웠다.
★글의 '문제성'이 중요
데리다는 “책의 저자명은 별 가치가 없다. ‘데카르트’‘라이프니츠’‘헤겔’같은 저자명을 거론하는 것은 천박스럽다. 중요한 것은 저자명이 아니라 그 책의 ‘문제성’(problem)이다”고 했다. ‘천부경’과 ‘삼일신고’ 같은 글의 저자명이 불분명하다고 그 글의 문제성마저 부정해 버리려는 우리 사학계에 귀감이 되는 말이다.
‘피타고라스의 바지’의 저자 마가레트 워텀은 현대 사이버 공간의 유래를 단테의 ‘신곡’에서 찾고 있다. 사이버 공간은 이름도 성도 시간도 무용지물인 공간이다. 메타 공간의 세계이다.
우리 나라 사학자들이 실증자료와 역사적 유물로서의 하드에 집착하고 있는 한 이런 것도 모르는 ‘촌뜨기’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21세기 우리 역사에 대해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작가들에게 더 큰 기대를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를 실증사학자들의 손에만 맡겨두는 한 이웃 나라들에게 우리 것을 다 빼앗기고 말 것이다.
김상일〈한신대·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