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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양미강/수요시위, 그 당당한 외침

입력 | 1999-09-02 19:25:00


97년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학 박사논문을 마무리하고 있을 때 내 인생의 중요한 행로를 결정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일해 볼 의사가 없느냐는 전화였다. 처음에는 조금 망설여진 것이 사실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보다 머리로 일하던 내게 이제는 발로 일해보라는 뜻이라고 받아들였다. 또 귀를 솔깃하게 한 것은 정대협이라는 단체의 이름이었다. 정대협은 여성운동사에서 획을 그을 만큼 성공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부각시켰다. 여성사를 전공하며 여성해방에 관심을 가졌던 젊은 여성이 정대협에서 일하게 된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결과인지 모른다.

정대협에서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일하며 많은 것을 새롭게 느끼고 새롭게 배우고 있다. 여성들이 어떻게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지, 어떻게 스스로를 억압의 굴레로부터 해방시켜 나가는지 확인하게 된 것이다.

92년 1월8일, 수요시위를 처음 시작할 당시 할머니들은 행여 남들이 알까 고개를 숙이며 멀찌감치 시위 행렬 뒤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할머니들은 현수막 앞자락을 거머쥐고 소리내어 힘있게 일본대사관을 향해 구호를 외친다. 어두웠던 얼굴, 수치스러웠던 과거를 잊고 싶어하는 얼굴이 아니라, 이제는 환하고 당당하다. 스스로를 역사의 피해자로 인식할 정도로 그들의 생각은 바뀌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자신의 말을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의 주장을 말하기 시작했다. 억압되어 있는 분노가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억눌렸던 자아로부터의 해방이다. 지난 50여년 동안 할머니들의 마음 속 깊게 숨겨진 분노는 더 이상 마음 속에 응어리져 있지 않고, 분노가 되어 열을 뿜는다. 그것이 욕이 되어 일본대사관 벽을 뚫고 들어가기도 한다. 또 몸부림이 되어 대사관 앞을 지키고 있는 전경들과 몸싸움이 되기도 한다. 이제 할머니들은 자기를 지키는 사람들인 것이다.

정대협은 비정부기구(NGO)의 위상을 높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려 알리고 국제적 연대를 형성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매년 일본 정부를 향한 국제기구(유엔인권위원회 국제노동기구 국제법률가협회 등)의 권고를 받아내 올해는 유엔 인권소위원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책임을 묻기도 했다. 이같은 국제연대의 두꺼운 끈은 일본의 시민단체들과 대만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피해국의 시민단체들과 공동연대 활동을 통해 더욱 확고해졌다.

이제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더 이상 아시아 피해국만의 일은 아니다. 세계적인 지평으로 확장돼 세계의 여성, 인권단체들과 함께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으로 그 결실을 맺을 예정이다. ‘위안부’ 제도를 만들었던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폭력으로 얼룩진 20세기를 마무리하고 평화의 새로운 천년인 21세기를 맞이하기 위해 여성에 대한 폭력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바로 이같은 인식을 토대로 여성의 힘으로 책임자를 처벌하는 국제인권법정을 열기로 한 것이다. 이 일을 통해 진정한 이 땅의 평화가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정대협은 내가 지향하는 여성해방,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여성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내 생각을 펴는 도량이다.

양미강(목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