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슈추적]우체국 ‘돈 장사’ 열중…본업 ‘뒷전’

입력 | 1999-09-03 18:29:00


최근 일선 우체국에서 전직원에게 예금과 체신보험을 유치하도록 강요하고 공중전화카드 지하철정액권을 팔도록 종용하면서 개인별 목표액까지 제시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이 때문에 집배원 등 우체국 직원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우편물 배달 등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실태▼

서울 K우체국 직원 S씨는 8∼9월 ‘예금증강기간’을 맞아 우체국장으로부터 500만원의 예금을 유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올 5월 예금증강기간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친지의 도움으로 예금유치 할당액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떻게 목표액을 채울 지 여간 고민이 아니다.

S씨는 궁리 끝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부인 명의로 우체국에 예금을 하기로 했다. 우체국 직원들 사이에서 이른바 ‘자살골’로 불리는 방법이다.

S씨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한달 후에 예금을 빼내 은행 대출금을 갚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우체국 직원들은 예금증강기간이 아니더라도 예금과 체신보험 유치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일부 우체국에서는 개인별 보험 유치 실적을 막대그래프로 그려놓고 목표달성을 독려하고 있을 정도다.

서울 Y우체국의 한 직원은 “보험을 유치하면 1회 납입분의 10% 정도를 수당으로 받지만 보험회사 직원도 아닌데 쥐꼬리만한 수당을 받자고 보험유치에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또 일부 우체국에서는 공중전화카드나 지하철정액권을 판매하라며 개인별로 월별 목표액을 제시, 직원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문제점▼

우체국 직원들이 할당량에 얽매여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한 집배원은 “주민들에게 보험이나 예금 가입을 권유하다 보면 우편물 배달이 늦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우편함 대신 아파트 계단에 우편물을 던져놓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통부 관계자는 “우체국도 예금과 보험을 취급하는 기관인 만큼 목표액을 정해놓고 실적을 올리도록 독려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실적부진을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진(金眞)변호사는 “목표달성 강요가 정도를 넘어선다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수도 있다”며 “공공서비스기관이 ‘실적’에 얽매여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