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던 가장이 어느날 갑자기 폐암진단을 받으면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청천벽력이다. 아무리 자책해봐야 엎질러진 물이다. 36년간 하루 한갑 이상 담배를 피워온 50대 가장의 폐암말기 판정 앞에 넋을 잃은 가족들의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국가와 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지만 분풀이가 될 수 없다. 청구액 1억원이 100% 인정된다 해도 슬픔을 가라앉힐 수 없을 것이다.
▽폐암발생의 책임문제에 대해서는 혐연권(嫌煙權) 또는 흡연권(吸煙權) 어느쪽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견해가 갈릴 수 있다. ‘자기가 좋아서 피워놓고 이제 와서 책임을 떠넘기느냐’는 흡연자책임론, 국민건강을 책임진 국가와 담배의 해악을 충분히 경고하지 않은 담배인삼공사에 당연히 책임이 있다는 국가 및 제조사책임론 모두 그럴듯하다. 아무튼 올 것이 왔다. 세계적 담배회사들이 휘청거릴 정도의 엄청난 손해배상을 물리고 있는 미국의 경우가 이젠 남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담배소송 뒤에는 법률회사들의 집요함이 숨어있다. 지난해 12월 텍사스 등 3개 주정부와 담배회사들 사이에서 의료비 배상소송의 일괄타협안을 마련하는 데 성공한 변호사들은 총 81억6000만달러(약 1조원)의 보수를 인정받았다. 또한 담배소송 한건에 보통 수백억원씩 배상을 받아내는 미국에 비하면 이번 1억원은 새발의 피도 안된다. 그러나 이는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시민들의 잠자는 권리의식을 깨워 놓았기 때문이다.
▽흡연율 세계 1위, 폐암 등 흡연관련 사망자수 연간 3만5000명, 흡연으로 인한 경제손실 6조원. 웬만한 전쟁보다도 참혹한 결과를 낳고 있는 게 담배다. 국가가 팔짱을 끼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담배판매수입만 올리려 할 게 아니라 담배의 해악으로부터 국민건강을 지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