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이 무엇에 분노를 느끼는지 알라’.
일본인 만화가 토가시 요시히로의 ‘헌터X헌터’에 나오는 구절. 요즘 만화가 철학자의 심오한 에세이 못지 않은 수준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에게도 ‘유유백서’ ‘우주인’ 등의 만화로 잘 알려진 토가시 요시히로. 그의 이 신작 시리즈는 최근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만화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현재 3권까지 단행본이 출간돼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토가시의 만화는 모두 환타지를 다룬다. ‘유유백서’는 마계(魔界)라는 소재를, ‘우주인’은 지구에 살고 있는 우주인을 다뤘다. 그리고 ‘헌터X헌터’는 가상세계에서 보물찾기 자격증 시험 ‘헌터’에 참가한 주인공 ‘곤’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그의 만화는 무국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내용들로 펼쳐진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우리 주위의 세계가 만화 속의 무대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게 한다. 그의 환타지 문법이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한적한 시골의 농가가 알고 보니 우주인들의 비밀 기지라는 식의 설정. 우주인들이 지구를 정복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야구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설명. 그리고 ‘헌터’를 뽑는 시험장 입구가 거리에 널려 있는 작은 식당이라는 식으로 그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잇는 물건들을 환타지의 소품으로 활용한다. 이 때문에 그의 만화를 보고 나면 거리에서 마주치는 익숙한 풍경들이 달리 보인다.
바로 자기 옆 집이 지구 정복을 꿈꾸는 우주인들의 요새가 아닐까 하는 식의 상상을 하게 만든다. 평범하고 따분한 일상을 유쾌한 환타지의 세계로 바꿔놓는 재미가 토가시 만화가 지닌 마력이다.
김지룡〈신세대문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