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지 생산업체 에너자이저코리아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박성호차장(36)은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입사 1년6개월만에 건전지 업계에서 만년 3위에 머물러 있던 에너자이저를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끌어 올렸기 때문. 그의 이력을 보면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이 더욱 이해가 간다. 그는 지난번 직장인 한국 네슬레에서도 맡는 제품마다 어김없이 업계 1위로 끌어 올렸다.
박차장의 ‘미다스의 손길’이 처음으로 미친 제품은 네슬레의 이유식 ‘쎄레락’.
▼맡으면 업계 1위 신화▼
마케팅 부서로 입사한지 3개월 밖에 안된 그에게 처음 맡겨진 제품이었다. 쎄레락은 당시 세계적으로 엄마들에게 사랑받는 유아식이었지만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고전을 면치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는 우선 제품의 품질부터 따져봤다. 어느 제품보다도 우수하다는 확신이 섰다.
박차장은 곧바로 유통망의 문제점을 짚기 시작했다. 다른 국산제품을 취급하는 업체에 위탁판매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외국제품의 판매에는 소홀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곧 영업담당 매니저와 상의해 유통 형태를 위탁판매에서 지역총판으로 바꿔버렸다. 매출이 단숨에 세 배 이상 늘었다.
박차장은 “사회 초년병에 불과했지만 마케팅 담당자라는 점을 인정하고 따라준 영업매니저와 회사 직원들의 유연한 사고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한다.
▼외국社 장기투자 도움▼
선진 기업문화를 배우기 위해 졸업과 동시에 외국기업을 택한 그는 이 때 처음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네슬레가 커피 사업에 힘을 쏟기 시작한 89년 그는 커피 사업부로 발령받았다.
당시 커피시장은 국내업체가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 박차장은 우선 국내 커피시장의 트렌드 변화를 살폈다. 곧 자판기 시장이 만만치 않은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읽어냈다.
그는 “가게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높은 가격으로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고 자판기용 커피는 원가를 절감해 저가로 공급하는 이중가격 정책을 썼다”고 밝혔다. 네스카페 로고를 새겨넣은 자판기를 공짜로 공급,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일도 병행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네슬레는 커피 자판기 부문에서 국내 업체의 높은 벽을 넘고 업계 1위에 올라섰다. 95년에는 캔커피 부문을 맡아 역시 1년여만에 확고한 1위 자리를 굳혔다.
그는 “단기 승부에 집착하는 국내 업체와 달리 한 제품에 장기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는 외국기업 특유의 경영방침이 1위 달성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네슬레의 경우 10년 이상 1000억원 가량의 적자를 감수하면서 꾸준히 투자를 한 결과 커피사업에 본격 착수한지 2년만에 ‘본전’을 뽑아냈다고 그는 전했다.
▼"대표브랜드 키워야"▼
그는 “국내기업은 대표 브랜드 육성에 소홀한 것 같아 아쉽다”고 지적했다.브랜드 담당자를 존중해주는 분위기도 외국기업보다 덜 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얼마전 한 국내업체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는 박차장은 “‘이런 자리가 비었는데 당신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식의 설명은 없고 ‘일단 들어오면 당신이 원하는 자리를 주겠다’고 하는데 대해 실망했다”고 말했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