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한 소나무숲 속에서 무언가 후다닥 가지 위로 달려 올라가다간, 휙 이쪽을 본다. 길고 탐스러운 꼬리에, 날씬한 검은 몸이 영락없는 청설모다. 소나무 가지에 날름 앉은 녀석의 작고 가만 눈이 영검하다. 먼 기억 속에 언젠가 한번은 만날 것 같은 그 마음으로 나는 서 있다. 어쩌면 어머니도 꼭 그 마음으로, 당신이 그 안에서 나온 것만 같은 가만 눈을 들여다보고 앉았고, 나도 또한 그렇게 당신의 눈을 바라보고 누워서 서로 어르던 때도 있었거니, 당신은 그 영검으로 날 키우셨거니,
오래 바라보다간,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청설모도 나도 갈 길을 간다.
―시집 ‘바람의 저쪽’(창작과 비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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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청설모하고 그랬던 것처럼 살다보면 이따금 무엇하고인가 그렇게 시선이 딱 마주칠 때가 있다. 예기치 않았던 순간이기에 심층에 가라앉아있던 진실이 와락 밀려드는 그런 때가. 내가 잊어버린 것, 두고 온 것, 소외시킨 것, 심지어는 버리고 온 것들이 휙 이쪽을 바라보는 그런 아픈 순간이. 우리는 그 순간과 잠시 그러나 시인의 말처럼 ‘오래 바라보다간’ 서로의 길을 또 간다.
신경숙(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