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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삶·예술]비디오 신디사이저

입력 | 1999-09-09 19:21:00


비디오예술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영상제작기계인 신디사이저는 이른바 비디오영상합성기, 또는 이미지제조기의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 이미지제조(image processing)란 말은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의미보다는 기존의 이미지를 변형시킨다는 뜻이 더 강하다. 따라서 이미지제조란 비디오카메라가 생산해내는 다큐멘터리처럼 뻣뻣하고 사실적인 이미지들을 보다 예술적인 방법으로 재구성한다는, 이른바 형식의 변화를 일컫는다.

백남준은 단순히 비디오예술의 첫 개척자나 시행자가 아니라 새로운 비디오예술 도구나 방법론을 개발해 선구자가 된 것이다. 그가 개발한 비디오기술들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특히 자석을 이용하여 텔레비전의 이미지를 뒤틀리게 하면서 예술적으로 바꾸었던 시도는 후배 비디오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 신디사이저를 개발하여 비디오카메라가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속성을 다양한 컬러와 이미지효과를 곁들여 텔레비전의 이미지와 다른 비디오예술을 창조한 것은 백남준의 중요한 업적가운데 하나이다.

비디오카메라가 시판되었을 때 예술가들은 비디오를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했다. 비디오를 단순히 사건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다큐멘터리 작가,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퍼포먼스예술가, 고발이나 선동위주의 프로그램제작에 사용하여 사회적 변혁을 꾀한 민중예술가, 여성의 억압적 현실을 고발하는데 이용한 페미니스트예술가, 그리고 비디오를 조각의 보조수단이나 회화의 확장 등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백남준은 비디오카메라를 손에 넣고 나서 “앞으로는 텔레비전 음극관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오늘날에는 예술가들이 붓과 바이올린, 폐품으로 작업하지만 미래에는 반도체와 저항기로 작업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의 이러한 예측은 상당히 들어맞았다. 오늘날의 현대미술가, 특히 영상예술가들은 비디오나 테크놀러지를 가볍게 쓸 수 있는 연필처럼 생각한다.

백남준은 일본에 잠시 머물던 1964년에 일본인 기술자 아베 슈야와 함께 연구를 시작하여 1968년 보스턴의 WGBH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비디오영상합성기를 개발했다. 오디오 합성기는 1965부터 개발됐다. 비디오합성기의 개발은 이와 유사한 시기에 백남준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다.

백남준은 자석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왜곡시키거나 뒤틀리게 하였던 것을 기계를 이용해 보다 체계적이고 다양하게 색채와 이미지를 조합할 수 있도록 했다. 합성기를 통해 흑백이미지에 7가지의 무지개 색깔을 입힐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그리고 영상의 왜곡이나 변형을 통하여 보다 다양한 형식과 패턴을 창출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컴퓨터에 의한 이미지합성은 불가능했다. 컴퓨터가 워낙 커서 단순히 이미지조작만을 위하여 원거리로 이동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컴퓨터에 의한 이미지합성은 그때까지만 해도 기술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백남준은 비디오합성기를 개발하면서 비디오작가들 뿐만 아니라 방송국과 영화사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그는 당시 벨 전화회사의 기술자 마이클 놀의 도움까지 받는 등 열성적으로 연구했다.

백남준의 비디오합성기는 1970년 여름 미국 WBGH 방송사가 마련한 ‘비디오 공동체’라는 4시간 짜리 생방송에 처음으로 공식 사용되었다. 백남준은 신디사이저의 첫 사용을 기념, 지나가던 행인을 스튜디오 안으로 데려와 생방송중임을 증명했다. 이 생방송에서는 비틀즈의 음악이 등장하였고 백남준이 연출한 변형된 이미지들이 그대로 전송되었다. 시청자들의 전화가 이내 빗발쳤다. 어떤 사람은 방송사고냐고 물었고 또 어떤 사람은 신기술을 사용했냐고 물었다.

백남준은 비디오합성기를 이용한 이미지 변용의 무한한 가능성을 놓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다소 흥분한 듯한 논조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설명하려는 의미는 모두 표현되어 있다.

비디오합성기의 개발로 TV스크린은 이제 캔버스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르느와르처럼 화려한 색채로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폴록처럼 격렬하게

재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으로

백남준은 비디오합성기가 시청자들에게 추상프로그램을 선사할 것으로 보았다. 특히 그가 제안한 새로운 형식의 전자오페라에 이용할 수 있는 기술로 생각했다. 1972년에서야 WGBH는 백남준의 이런 생각을 실천하였다. 당시 이 방송국에서 일하던 저명한 음악PD 프레드 바르직은 ‘비디오 변주’라는 프로그램

을 제작 연출하였다. 이 프로그램에는 백남준을 비롯하여 더글라스 데이비스, 러셀 콘너, 웬잉 차이 등 9명의 비디오예술가들이 참가하였다.

이들은 보스톤 심포니오케스트라의 9개 소품연주에 맞추어 각기 제작한 비디오이미지를 시각적 배경으로 내보냈다. 백남준은 7분30초짜리 ‘전자오페라 2’를 제작했다. 베토벤의 4번 피아노콘서트 3악장이 연주되는 동안 배경화면에 추상적 영상이미지를 내보냈다. 그는 피아노연주자와 지휘자의 손을 혼합한 이미지로 아름답고 율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후에 흘러나온 이야기이지만 보스톤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괴상하게 비춰진 손과 지휘자의 혼합된 이미지에 대하여 거부감을 나타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백남준은 “그렇다면 성공이다. 나는 이 기회를 고상한 서양전통음악에 대하여 저돌적인 발언을 하고 싶었다”고 말함으로써 의도적으로 그로테스크 이미지를 제작하였음을 실토하였다.

이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