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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장애의 벽」 없는 세상 꿈꾸며

입력 | 1999-09-09 19:21:00


4년 4개월전 나는 대학(서울대 법대)을 졸업한 입사 5년차의 삼성 영상사업단의 평범한 직원이었다. 회사 온라인 게시판에 실린 사내구직공고가 나의 인생행로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이 공고는 ‘동물을 사랑하고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보세요’로 시작했다.

나는 동물을 아끼는 성격이었지만 개를 특별히 사랑하지는 않았다. 장애인 복지에 대해 남다른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삼성맹인안내견학교에 자원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도서관과 서점을 기웃거리며 안내견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개 훈련소를 찾아가 개를 훈련시킬 수 있는 자질이 내게 있는지도 자문해 보았다. 여러 복잡한 상념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공연히 창피만 당하지 않을까. 가족과 친구들은 무어라 생각할까. 그 많은 넥타이들을 이제 버려야 하나. 하지만 답은 쉽게 나왔다.

맹인안내견 보행훈련사는 시각장애인의 독립적인 보행을 돕는 맹인안내견을 훈련시키고 안내견의 주인이 될 시각장애인의 보행 교육을 하는 직업이다. 전문인력으로 선발된 뒤 뉴질랜드로 3년동안 연수를 다녀왔다. 지난해 귀국해 안내견들을 훈련시키고 시각장애인들을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매일 10여㎞씩 걷는 게 힘들었고 내 말대로 따라주지 않는, 말도 통하지 않는 개가 미울 때도 있었다. 내 교육을 받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일시적이나마 관여하는 것도 늘 버거운 일이다.

그럴 때면 뉴질랜드에서 안내견을 훈련할 때 일이 떠오른다. 훈련 막바지에는 비록 시력이 있는 정안인(正眼人)이라도 시각장애인이 된 듯한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개를 훈련해야 한다. 어느 날 건널목에서 훈련중인 안내견과 함께 서 있었다. 파란 불이 들어오고 막 건너려는 순간 한 뉴질랜드 할머니가 야위고 힘없는 손으로 내 팔목을 감싸며 “내가 길 건너는 것을 도와줄게요”라고 말했다.

스스로 몸도 가누기 힘들었던 그 할머니를 부축하다시피 해 길을 건너는 동안 왠지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나는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훈련사’라는 말을 차마 못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안내견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안내견을 귀여워해 안내견 보행지도사의 한사람으로서 무척 기쁘다. 어떤 꼬마들은 안내견을 보면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엄마, 저 개는 아무리 예뻐도 쓰다듬거나 먹을 것 주면 안되지, 그치?” 이제는 안내견이 마음대로 버스도 타고 택시도 타고 식당에도 호텔에도 들어간다.

한 지방도시에서 안내견 사용자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가 기사의 완강한 안내견 탑승 거부에 당황한 기억이 있다. 어떤 말도 듣지 않던 그 기사 아저씨를 설득한 것은 장바구니를 든 두 아주머니였다.

“아저씨, 저 개를 안 태워주면 앞 못 보는 저 사람은 어쩌란 말이에요? 우리는 반대하지 않아요.”

그 때 나는 환상을 보았다. 안내견과 함께 높은 장애의 벽을 뛰어넘는 내 장애인의 모습을, 아니 장애의 벽 자체가 허물어져 내리는 모습을. 날마다 나는 그것이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날을 꿈꾼다.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내 가치관과 소신 대로 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나의 인생의 진정한 주인인지 회의할 때가 많았다. 이런 의구심은 맹인안내견 훈련사의 길을 선택한 뒤 사라졌다.

이동훈(삼성맹인안내견학교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