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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국민을 범죄자 취급" 지문 날인 논란

입력 | 1999-09-12 18:31:00


7일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권희로(權禧老)씨가 공식적으로 ‘한국인’이 되기 위해 처음 해야 했던 것은 ‘10손가락 지문 등록’이었다.

재일동포들이 ‘외국인 지문날인’을 거부하며 반세기 가까이 일본정부와 싸워온 점을 감안하면 재일동포 차별 반대의 상징인 권씨가 한국인이 되기 위해 10손가락의 지문을 날인한 점은 아이로니컬하다.

한국은 전세계 자유국가 중 유일하게 전국민의 10손가락 지문을 받는 국가. 최근 인권단체들이 “지문날인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경찰은 “지문날인은 범죄수사 뿐만 아니라 각종 사고 희생자들의 신원을 신속히 알아내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인권단체들은 “지문날인은 인권침해일 뿐만 아니라 효과도 별로 없는 제도”라고 맞서고 있다.

지문날인제도는 과연 불가피한 조치인가, 아니면 국민을 범죄인 취급하는 인권유린인가. 그 의미와 쟁점을 점검해 본다.

◆문제의 발단

'국가안보우선주의' 때문에 30여년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해왔던 지문날인 문제는 5월 시작된 ‘주민등록증 경신사업’(플라스틱 주민등록증 도입)을 계기로 불거져 나왔다.

이 문제의 기원은 68년 통과된 ‘주민등록법 개정안’. 당시 여당이던 공화당이 단독소집한 국회에서 간첩과 범죄자 색출을 위해 ‘전국민이 주민등록 발급 당시 10개 손가락 모두의 지문을 등록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

이후 30년 넘게 당연시됐던 지문날인은 정부가 5월부터 주민등록증 경신작업을 추진하며 모든 국민의 ‘오른손 엄지’ 지문을 전산화하기 시작해 논쟁의 불씨를 제공했다.

현재 진행중인 경신작업은 기존 등록된 주민의 경우 전산화를 위해 오른손 엄지 지문을 추가로 받고 있으며 새로 등록하는 주민은 10손가락 지문을 모두 받고 있다.

또 7월에는 경찰청이 “만 17세 이상 33세 이하 남자(800만명)의 6손가락 지문에 대한 전산화작업을 마쳤다”고 밝히자 인권단체들이 “전산화를 하는 법적 근거가 뭐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민주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지문날인거부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했고 이달초에는 이들이 “지문날인제도는 헌법에 명시돼 있는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인격권 및 무죄추정의 원칙 등에 위배되므로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측은 “지문날인은 국민보호와 국가안보를 위해 존속돼야 하며 더욱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전산화는 필수적이다”며 ‘지문전산화작업’을 계속 강행하고 있다.

◆쟁점

인권침해 문제와 지문날인의 효율성 문제가 가장 큰 쟁점.

인권단체들은 “세계에서 전국민의 10손가락 지문을 국가가 관리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며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찰이 이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문날인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효율성 때문.

우선 경찰은 전과자를 위주로 지문을 채취할 경우 전체범죄의 43%에 이르는 초범자 검거가 어려워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인권단체들은 “지문 대조 수사는 너무 널리 알려진 기법이어서 범죄자 검거에 효과가 적다”며 의구심을 나타낸다.

하지만 경찰은 “우리나라의 범인검거율은 92%로 비전과자 지문을 채취하지 않는 미국(21%)이나 일본(42%)에 비해 월등히 높다”며 지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경찰은 대형사고시 사망자의 신속한 신원확인을 위해 지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 경찰은 265명의 사망자 신원을 지문대조를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시신 확인은 지문 외에도 치열구조나 유전자 감식 등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다”며 “사망자 확인을 위해 전국민의 지문을 채취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반박하고 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