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수에 눈이 멀어 다른 산업의 경쟁력이 망가지는 것을 방치했다.”
97년말 환란 직후 상당수의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사석에서 이렇게 털어놓으며 뼈저리게 후회했다. 90년대 중반 반도체산업의 호황에 들떠 업계는 물론 정부부처도 수출경쟁력에 심각한 이상이 나타난 사실을 무시했다는 것.
96년부터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자 경상수지 관리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외환보유고 고갈로 환란을 초래하고 말았다.
최근 반도체 수출경기가 급상승세를 타자 이같은 우려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수출 편중현상이 심한데다 소비수준도 환란 전으로 돌아간 탓이다.
▽수출 편중현상은 여전〓반도체 주력수출품인 64메가D램 가격이 치솟으면서 올해 반도체 수출은 200억달러를 넘을 전망. 반도체 최고호황기였던 95년의 221억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도 95년 수준(17.7%)에 육박할 가능성이 높다.
3대 수출품인 반도체 정보통신기기 승용차의 상반기 수출증가율은 21.8%인 반면 나머지 업종의 수출은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 경제가 불균형 성장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소비는 IMF 전 수준〓수출구조가 취약하고 소득은 거의 늘지 않았는데도 소비는 과열로 치달을 조짐. 한국은행 및 통계청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97년 상반기 가계소비 수준을 100으로 했을 때 올 상반기 소비수준은 96.1에 육박했다.
해외여행도 늘어나고 휘발유값이 1200원대로 올랐는데도 교통체증은 IMF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상반기 가계소득은 지난해에 비해 미미한 증가에 그친 반면 소비수준은 IMF 이전으로 돌아갔다.
▽신중해진 업계와 정부〓11일 현재 외환보유고는 645억달러. 매월 20억달러 안팎의 무역수지 흑자를 감안할 때 제2의 환란 가능성은 낮다.
정부는 그러나 반도체 호황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입장. 오영교 산업자원부차관은 13일 “반도체 수출시장이 선진국 일변도에서 동남아 등으로 다변화됐지만 반도체에 의존하는 수출구조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