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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홍찬식/새 방송위원장의 ‘소신’

입력 | 1999-09-13 19:32:00


교수들의 공직 진출이 늘고 있다. 장관이나 정부 산하단체 요직에 교수 출신이 기용되는 예가 적지 않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진출’보다는 ‘영입’이다. 정부나 권력 차원에서 먼저 끌어들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권이 교수에게 눈독을 들이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안에는 학자들의 참신한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도 분명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교수시절 학술세미나나 각종 기고를 통해 일관되게 내세우던 주장을 공직 취임 이후 뒤집거나 입장을 유보하는 것이다. 학계에서 흔히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높은 자리에 오르더니 말이 달라지는’ 경우다.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부총장으로 있다가 새 방송위원장에 임명된 김정기씨도 한 예가 될 듯하다. 김위원장은 통합방송법 논의과정에서 KBS경영위원회 신설과 MBC 민영화론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그는 취임 후 이 문제에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 방송계에서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는 “KBS경영위원회 신설에 대한 견해는 학자로서의 주장이었으며 방송위원장이 된 지금은 입장이 다르다”고 밝혔다. 방송위원장으로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없다는 설명에는 수긍이 가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 혼란스럽다. 학자의 신념과 원칙이 공직자가 됐다고 해서 쉽게 바뀐다면 학자의 말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있다.

▽이들이 말을 바꾸는 모습을 지켜보는 지식인사회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공익’보다 ‘조직’의 논리가 앞서 있는 정부나 산하 기관의 근무 풍토도 원인의 하나라는 것이다. 교수출신 공직자들이 일반 공무원과 차별화된 모습을 인정받으려면 모든 언행에서 좀더 새로운 발상과 접근방식을 보여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