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황령터널 입구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사태가 도시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을 덮쳐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8월초 폭우때도 경북 영주에서 도로변 산사태가 지나가던 차량을 덮쳐 수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적도 있다. 이같이 매년 똑같은 사고가 전국에 걸쳐 다발하고 있다.
현장답사로 파악한 황령터널 입구의 붕괴원인은 암석내에 발달한 10m 길이의 긴 절리(節理)가 도로 쪽으로 20∼25도 기울어지고 틈새에 점토가 메워져 길이 200m 폭 100m 깊이 20m의 대규모 암괴가 도로 쪽으로 미끄러져내린 것이다. 폭우는 간접적인 원인이며 원래 위험요인이 내재하고 있었다. 지난 10년간 수많은 산사태 붕괴현장을 관찰한 경험에 비추어 대규모 산사태는 이같이 인위적인 절개지의 암석내 균열인 절리나 단층에 의해 대부분 발생한다. 이 절리의 발달상태를 관찰하면 절개지가 붕괴될 것인가, 안전한가를 거의 완벽하게 과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적절한 대책만 세우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절개지 붕괴로 인한 후진국형 인명피해가 매년 평균 80여명 발생해 안타깝다. 그런데도 60년대식의 고루한 건설기준을 고수해 많은 예산을 들이면서도 불안한 절개지가 전국 도처에서 건설되는 것이 현실이다.
절개지 건설기준에는 균열특성을 무시하고 암석을 일률적으로 63도로 깎으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설계기준에 따라 시공하는데도 불구하고 시공하는 도중에도 암석의 절리에 따라 붕괴사고가 빈발해 공사가 중단되고 공기가 연장되는 막대한 국가예산 낭비가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진 외국처럼 암석 절개지는 암석의 절리에 따라서 40도까지 완만하게 하거나 80도까지 가파르게 깎도록 허용해야 한다.
설계된 대로 시공하는 것을 확인만 하는 수동적인 감리자의 역할로서는 절개지 안전을 확보할 수가 없다. 최종 절개지를 완공한 후에 절개지 표면에서 암석의 균열을 재차 조사해 차후에 붕괴 위험이 없는가를 감리자가 확인해 책임지도록 제도화하면 이번 사고처럼 완공 후에 붕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완공된 절개지 표면에는 천편일률적으로 쇠그물망이 씌워져있는데 안전한 절개지도 쇠그물망을 씌워놓은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실상은 미봉책일 뿐이다. 산간도로에 즐비한 낙석위험 표지판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황령터널입구 절개지 붕괴사고에서 보듯이 대규모로 암괴가 붕괴될 때는 아무런 효과가 없고 누구나 운이 나쁘면 희생당할 수 있다.
절개지는 암석의 절리 발달이 다르므로 특성에 맞게 적합한 보강대책을 세워 과학적으로 필요한 부분만 보강하면 예산도 크게 줄이면서 안전하게 절개지를 건설할 수 있다.
70%가 산악지대인 우리나라의 지형특성상 산지에 도로와 택지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 홍콩에서는 산지를 개발하다가 72년 산사태로 인해 아파트가 붕괴돼 67명이 사망한 이후 절개지 건설 때 암석의 절리를 충분히 고려토록 하면서 붕괴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이수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