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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추적]'서민 애환' 소주 한잔으로 달랬는데…

입력 | 1999-09-15 19:40:00


정부가 내년부터 소주의 세율을 올리고 양주와 맥주의 세율을 내린다는 주세율 확정안을 발표하자 시민들의 불만이 적지않다.

시민들은 세계무역기구(WTO)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서민의 술’인 소주가 ‘한잔에 500원’이 된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시민반응

정부의 세율안이 적용될 경우 실제 업소에서의 소주판매가격이 현재의 2000∼3000원에서 4000∼5000원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퇴근 후 한 잔의 소주로 애환을 달래온 서민들이 이제 소주마저 마음껏 마실 수 없게 됐다.”

“정부가 WTO협상에서 패배한 책임을 왜 서민들이 떠맡아야 하느냐”는 게 일반 시민들의 대체적 반응이다.

서울은행 본점에서 근무하는 권순한씨(30)는 “그동안 정부의 무관심으로 전통적 대중주인 막걸리 약주 등이 모두 사라졌다”면서 “마지막 남은 서민의 술인 소주마저 이 지경으로 만들면 이제 무슨 술을 마시란 말이냐”고 푸념했다.

열성 소주애호가들은 최근 인터넷에 ‘소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소사모)을 결성하기도 했다.

‘소사모’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인들이야 양주만 마셔서 모르겠지만 우리 서민은 그나마 누리던 작은 행복마저 빼앗긴 기분”이라고 말했다.

소주업계에서도 이같은 시민들의 반발 움직임에 편승, 세율인상방침의 철회를 촉구하는 서명운동과 함께 대규모 궐기대회까지 벌일 방침이다.

반면 강남의 고급술집 업주들은 위스키 등 양주값 인하방침에 매출액 증가를 기대하며 환영하는 분위기.

서울 강남의 ‘P유흥주점’ 업주 이모씨(40)는 “당장의 매출증대보다 장기적으로 양주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줄면서 유흥업소를 찾는 손님이 늘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모임 송보경(宋寶炅)회장은 “소주세율의 인상은 정부가 무역전쟁에서 외국의 공격에 패배한 대표적인 사례로 결과적으로 소비자들만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주세 현황

내년부터 소주세율이 현재의 35%에서 80%로 오르면 800원짜리(참이슬, 미소주 등) 한병의 소매가격이 1040원으로 뛰게 된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세금을 어느 정도 매기고 있을까. 각국별로 주세를 결정하는 시스템과 방식이 크게 달라 ‘주세’만을 직접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 나라의 소매시장에 나온 주류의 소매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비교해볼 수 있다.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5개국과 한국을 비교한 OB맥주측의 조사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세금비중이 가장 높은 품목은 위스키로 미국과 영국 독일 등 3개국에서 나란히 61%였다. 우리나라는 47%로 일본의 26% 다음으로 세금비중이 낮은 편.

가장 세금비중이 낮은 품목은 와인으로 미국과 독일 13%, 프랑스 19%, 한국과 일본은 26%다. 영국의 경우 45%로 비교적 높은 편.

소주의 경우 이번 주세 인상으로 인해 세금비중은 40%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출고량을 기준으로 할 때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출고된 주류는 소주다. 소주의 경우 91년과 95년 두차례를 빼면 꾸준히 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맥주는 94년 한때 전년에 비해 10.8%의 성장을 보였으나 그 이후 계속 줄어드는 추세. 특히 지난해 IMF체제를 맞으면서 13.3%의 감소를 보이기도 했다.

위스키 역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다 97년과 98년 각각 전년 대비 최고 45.5% 줄었다.

★독주(毒酒)와 건강

과거엔 알코올도수가 30도 이상이던 소주 고량주 등을 독주라고 불렀지만 요즘 소주는 30도 이하로 떨어져 독주에도 못 낀다는 것이 소주업계의 항변이다.

또 연세의료원 간전문의 한광협(韓光協)교수는 “알코올이 인체에 주는 영향은 술에 들어 있는 알코올의 양과 흡수기간에 달려 있다”며 “도수가 높은 술이 반드시 건강에 더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마시는 속도와 양만 똑같다면 30도짜리 술 2병을 마시는 것이나 10도짜리 술 6병을 마시는 것이 간에 미치는 효과는 같다는 것.

한교수는 그러나 “도수가 높은 술은 용량이 적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많이 마시게 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실제 국내 알코올중독자의 대부분이 값이 싸면서 도수가 높은 소주를 주로 마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독주의 잠재적 위험성을 경고했다.

〈김상훈·박윤철기자〉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