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e.’
바구와티 교수(55·미국 컬럼비아대)가 보내온 E메일은 단 한마디였다.
그러나 컴퓨터를 열어본 김영호(金泳鎬·경북대 경상대 학장)교수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흘렀다. 며칠간의 속앓이가 깨끗이 씻겨지는 순간이었다.
▼서상돈賞 수상 초청에 "Fine"▼
김교수의 마음고생이 시작된 건 이달초. 자신이 주창한 이른바 ‘대구라운드’ 국제포럼에 바구와티 교수를 초청한 데서 비롯됐다.
국내에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대구라운드’는 국제자본에 대한 민주적 제어시스템을 갖추자는 취지. 외환위기의 원인이 된 국제투기자본의 해악을 절감한 김교수가 시민운동단체들과 함께 벌이고 있는 운동이다.
구한말 들불처럼 번졌던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잇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름은 발원지를 따서 ‘대구라운드’로 명명했다.
대구라운드측은 포럼의 상징으로 ‘서상돈상’을 제정했다. 서상돈은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인물.
초대 수상자로 김교수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바로 바구와티 교수였다.
▼처음엔 무응답 주최측 속앓이▼
인도 태생의 천재적 경제학자인 바구와티는 이미 20여년 전에 국제투기자본의 해악을 경고한 저작을 내놓으면서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은 인물. 노벨경제학상의 단골 후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교수가 존경한 것은 바구와티의 학자적 재능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경제학계의 양심’으로 불립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할 때 세계 경제학자 500명이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라며 한목소리로 추천한 이가 바구와티였죠.”
강대국 논리에 가난한 나라의 경제가 좌우되는 현실을 지적한 바구와티는 그래서 ‘빈국의 친구’로도 불려왔다.
김교수는 바구와티 교수에게 내달 6일부터 열리는 국제포럼 초청 서신을 띄웠다.
“우리 운동의 정신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당신”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바구와티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전화를 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2만여달러 제시 日초청 사양▼
알고 보니 바구와티는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주최하는 행사에 초청돼 있었다. 요미우리측은 초청료로 2만5000달러를 제시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반면 대구라운드측이 줄 수 있는 초청비는 겨우 2000달러.
‘돈 때문이었나.’
학자처지에 적지 않은 돈이어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실망스러웠다. 배신감마저 들었다.
‘대답없는 구애’에 지친 김교수는 마침내 ‘절연하는’ 심정으로 E메일을 띄웠다.
“당신을 평소 가난한 자들의 친구로 존경해 왔는데 돈 때문에 못오겠다는 것이냐. 그렇다면 정말 실망했다.”
김교수의 진심이 전해졌을까. 이틀 뒤 바구와티로부터 생각지도 않은 답장이 날아온 것이다.
“그사람 만나면 할 얘기가 참 많을 것 같아요.”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수십여년을 사귄 것 같은 ‘친구’와의 만남을 김교수는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