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제일은행 매각이 타결됐지만 대형 시중은행을 ‘단돈 5000억원’에 팔았다는 헐값매각 시비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뉴브리지가 제일은행을 완전히 인수한 뒤 2년간 발생하는 부실여신을 정부가 되사주기로 하는 등 매각조건도 작년 말 맺은 양해각서(MOU)에 비해 열악해졌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헐값매각〓금융감독위원회는 7월26일 성업공사가 9000억원어치의 부실채권을 매입, 제일은행이 ‘클린뱅크’로 변신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새로운 자산건전성분류기준(FLC)에 따른 대손충당금 적립 및 추가 부실여신 발생의 여지가 있지만 지금은 남아있는 부실채권이 한푼도 없다는 것. 7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결과다.
이같은 클린뱅크를 5000억원에 넘긴다는 것은 아무리 계산해봐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른바 ‘풋백옵션’. 제일은행을 넘기면서 2년 동안 발생하는 부실을 모두 정부가 되사준다는 것이다. 대우 계열사 등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업체의 여신은 3년 동안 지급을 보증했다.
물론 정부도 할 말은 있다. 당초 5년 요구를 2년으로 줄였고 MOU상에서는 고정이하 부실여신이 모두 풋백옵션 대상이었지만 이것도 ‘부도가 날 경우’로 범위를 좁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정부가 떠안은 것은 ‘불평등 조항’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매각시한 설정부터 꼬였다〓정부는 제일은행 매각시한을 정해놓고 뉴브리지와 협상을 시작, 헐값매각을 자초했다. 일단 고개를 숙이고 협상에 들어간 셈. 뉴브리지와의 배타적 협상시한(5월2일)이 지나고서도 다른 파트너를 물색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결국 서울은행 매각협상 결렬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정부가 대외 신인도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헐값매각밖에 없었다는 것.
7월초엔 지금보다 좋은 조건에 협상을 끝낼 기회가 있었지만 당시로서도 헐값매각이란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를 스스로 놓쳐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보신주의에 물든 관료집단이 협상전문가인 뉴브리지와 맞선 것도 잘못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매각 실무책임자인 남상덕(南相德)금감위심의관은 이에 대해 “매각에 대한 평가는 국민의 몫이지만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한편 기존주주들의 재산권에는 변동이 없다.
▽은행 판도 변화〓뉴브리지의 제일은행 인수로 국내 은행권은 외국계와 토종은행으로 양분돼 일대 혈전(血戰)이 불가피해졌다.
외국계는 외국자본을 유치했거나 추진하고 있는 외환 주택 국민 한미 하나 등에 제일은행이 가세했다. HSBC와의 매각협상 결렬 후 외국 경영진을 영입할 계획인 서울은행도 외국계로 분류된다.
이들의 최대 강점은 선진 금융기법. 수입원의 다변화도 배워야 할 대목이다.
금융계는 선진 기법으로 무장한 외국계 은행에 대응해 나머지 토종은행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합병을 추진하는 등 조만간 은행권 2차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