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20여년 전부터 ‘이지메(집단 따돌림)’현상에 시달려 왔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극성인 일종의 ‘유행병’. 최근엔 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교사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수업붕괴’사태까지 빚어진다. 선생님을 향한 ‘왕따’다.
일본 국민성에는 강한 집단의식이 있다. 이 집단의식이 좋은 방향으로 나타난 것이 그들의 단결성이고 나쁜 쪽으로 표출된 것이 이지메라 할 수 있다.
남들보다 너무 튀어도 왕따 당하고, 남들이 다하는 유행을 따라하지 않아도 따돌림 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 패션이 각광받았다. ‘중고(中古)패션’이다. 똑같이 허름한 옷을 입음으로써, 튀지도 않고 유행에도 뒤지지 않는 방어용 패션이다.
이같은 낡은 옷 입기는 90년대 초 물건을 재활용하자는 ‘리사이클 운동’과 함께 출발했다. “헌 진바지를 모으는 것이 취미”라는 ‘SMAP’ 등 뮤직그룹들이 일으킨 중고패션 붐과, 츠모리 치사토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낡은 옷 같은 느낌을 주는 제품의 등장에 힘입어 스트리트 패션으로 자랐다.
왕따에 대한 소극적 대응으로 입게 된 ‘중고 패션’이 오히려 눈에 띄는 개성파 스타일로 바뀐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중고 패션’은 들어왔다. 학교 가정통신에 아이들에게 너무 좋은 옷을 입혀 등교시키지 말라는 지침이 있다고 한다. 좋은 옷을 입어 빚어지는 왕따를 막아보자는 얘기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고 패션’이 왕따를 물리치는 효과를 낼 것인가.
김유리(패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