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태백산과 소백산 등의 산등성이에 쇠말뚝이 박힌 것이 다수 발견돼 물의를 빚은 일이 있었다. 우리 민족정기를 죽이려고 일제가 해놓은 짓이었다는 것이다. 이 산들은 백두산 금강산 그리고 오대산 설악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과 함께 한반도의 뼈대에 해당한다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을 구성한다. 여야의원 38명이 18일 이 백두대간을 무분별하게 개발하지 말라는 취지의 환경보전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관심을 모은다.
▽백두대간의 개념을 만든 사람은 통일신라 때 선종(禪宗)의 큰 스님인 도선(道詵)이다. 그는 당시 선종의 스님들이 그랬듯이 전국의 이름난 산을 돌아다니며 수련했다. 그러면서 산세와 지형에 대해 남다른 감각이 터져 한반도 풍수지리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마치니 그 세는 수(水)를 근본으로 하고 목(木)을 줄기로 하는 땅”이라고 했다.
▽풍수지리는 우리 역사와 생활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울도 풍수지리 덕으로 조선조의 도읍으로 정해져 오늘에 이른 셈이다. 지역차별이 정쟁 때문에 노골화됐지만 그 연원은 풍수지리 신봉자였던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訓要十條)라는 견해도 있다. 그 8조가 “차현(車峴)이남 공주강 밖은 산형과 지세가 거슬리므로 그 지방사람은 등용하지 말 것”이라고 돼 있다.
▽조선태조 이성계만 해도 신생왕조의 융성을 통해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려 고민한 끝에 풍수지리에 의존했다고 한다. 그러다 성종이후 나라가 안정되자 대의적 풍수지리는 사라지고 가문과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잡술(雜術)로 타락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것을 한말 실학자들이 건강한 토착지리학으로 개편하려 했으나 외세 침략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백두대간 보전법도 풍수지리 영향인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이 법이 제정되면 그 효력이 백두산에까지 미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김재홍 논설위원〉nieman9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