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하루 23만명 가량이 접속하는 PC통신 천리안의 ‘라이브미팅’(go livemeet). 미팅 신청자 중 선발된 여성 4명이 다수의 남성과 채팅을 나누며 파트너를 ‘찍는다’.
서연정(24·여·회사원) 송석민씨(24·프리랜서)도 ‘라이브 미팅’을 통한 만난 경우.
“‘데이트’를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됐느냐?”는 기자의 이메일 질문에 “데이투라니요, 왑헤헤헤헤, 욜리 닭살”이라며 “아직 탐색중”이라고 답장을 보내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뒤에도 여전히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기 보다는 통신으로 메일을 주고 받는 것을 선호.
▼디지털연인▼
PC통신 유니텔 테니스동호회(go tennis) 회원인 최진우(30·KCC 영업기획과) 조진형씨(29·여·두지출판편집부). 98년 10월 동호회 게시판에서 본 서로의 글에 이끌려 ‘쪽지’를 주고 받기 시작, 지금은 조심스럽게 결혼 얘기도 하는 사이가 됐다. 그러나 ‘현실공간’에선 ‘쑥맥’.
최근 한 레스토랑에서 조씨가 실수로 지갑을 재떨이에 떨어뜨렸을 때, 최씨는 “칠칠맞게…”라며 혀를 찼다. 아무 말도 안한채 서먹하게 헤어진 두 사람. 그날 저녁 최씨는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네가 실수를 했을 때 옆 사람이 너를 쳐다보는 게 싫어서 그만 흥분을…. 나도 모르게 너를 ‘그냥 친한 사이’ 이상으로 생각했나봐….―_―;”(당황해서 땀을 흘리는 모습이다)”
다음날 최씨가 받은 답장. “알고 있었어.:)”(신문을 옆으로 돌리면 웃는 얼굴이 나타난다)
▼말,그러나 텍스트▼
60,70년대의 청춘은 표현을 못하고 목에 힘만 주었다. 80년대말, 90년대 초의 X세대는 풍요속에 자라 도덕과 시간관념에 구애 받지 않고 거침 없이 자기 의사를 표현했고.
요즘 디지털세대의 의사표현방식은 이 둘의 중간.현실에서는 쑥맥이다가 네트워크에서는 ‘돈 후앙’으로 변신하기도.
전문가들은 이를 네트워크의 ‘불완전성’이 만들어낸 현상으로 해석한다.현재 네트워크를 통해 쉽고 빠르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글(텍스트)이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정현희박사는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짓는 요인에서 외모의 비중이 줄어들고 텍스트를 이용한 표현력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때문에 얼굴을 마주 보며 자신을 표현하는 ‘사회적 기술’에 대한 관심은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자아분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과학부 최혜실교수는 “텍스트를 이용한 의사소통은 말한 이가 말을 듣는 이 앞에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상 일치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실재하는 자아와 상상에 의해 만들어낸 자아, ‘실재연인’과 ‘디지털연인’ 등 넷이 함께 사귀는 형국이라는 설명이다.
앞으로 3차원영상에 촉감 부피감까지 네트워크로 주고받는 사회가 되면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은 설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 느낄 수는 있지만 실제로 없을 때, 컴퓨터에 저장된 영상과 감촉 소리를 이용해 상대가 없는 상태에서 그 사람과 섹스를 할 때, 현재와 같은 경미한 ‘자아분열’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
미국 MIT 컴퓨터과학연구소의 마이클 더투조스소장은 저서 ‘What will be’에서 “디지털기술의 발달은 ‘지금 우리 주위의 세상이 우리 머리속에만 있지 않고 실제로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물음에 다시 현실성을 불어 넣었다”고 했다. 정교한 가상현실 기술이 실용화되면 사람들은 가짜현실과 진짜현실을 오가게 되면서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그래도 사랑해▼
최인우씨(34·회사원)와 10월 결혼하는 서초우체국 예금보험과 이신호주임(31·여). 3월 통신으로 처음 만나 통신으로만 사귀어 오다가 두달전 처음 서로의 ‘실체’를 보았다.
이주임은 그만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고 도망칠뻔 했다. 최씨는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려는 일념에 검정색 쫄티와 바지를 입고 머리는 노랗게 염색한, 영락없는 ‘건달’차림으로 나온 것.
디지털 연인과 실재연인의 괴리를 확인하고 ‘쇼크’를 받은 이주임. 그러나 그는 최씨의 눈빛에서 봤다. 힘들고 지칠때마다, 5개월을 하루같이 시집과 수필집에서 찾은 아름다운 문구를 배달했던 그 남자의 진실을….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다음편은…▼
해외출장을 앞두고 BC카드를 해외에서도 쓸 수 있도록 바꾸기 위해 최근 한빛은행을 찾은 김모씨(28·회사원). 창구직원 박선영씨(가명)로 부터 “카드를 갱신하면 그동안 적립된 포인트가 사라진다”는 퉁명스런 대답을 들었다.
BC카드 본사에 전화를 걸어 “포인트는 계속 누적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김씨는 한빛은행 홈페이지(www.hanvitbank.co.kr)에 ‘사건 전말’을 써올렸다. 2시간 뒤 전화벨이 울렸다. “저, 한빛은행 박선영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