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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대학원생의 죽음

입력 | 1999-09-20 18:43:00


18일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실험실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중태에 빠졌던 대학원생 3명이 결국 모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희생이다. 교수의 연구업적은 대학원생들 손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밤낮없이 실험실에 틀어박혀 궂은 일,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던 이들이다. 대학의 연구기능은 대학원생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게 오늘의 대학 현실이다. 이번 사고는 대학의 연구여건과 특히 대학원생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공계 대학의 실험실에 가보면 열악한 연구환경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빼곡하게 놓인 각종 실험기기들과 바닥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전기코드 등 곳곳에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고가 일어난 원자핵공학과처럼 대형장비가 필요한 곳은 형편이 더욱 나쁘다. 실험실 전체가 미로나 다름없다. 학생은 갈수록 늘어나고 실험실 공간은 제한되어 있는 탓이다. 이런 곳에서 폭발이나 화재 위험이 따르는 실험을 하는 대학원생들은 늘 불안과 공포,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이런 여건이라면 경쟁력있는 연구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실험실은 평소에도 폭발실험을 자주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험에 필수적인 방폭설비(폭발로부터 실험자를 보호하는 시설)는 아예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저 조심 조심해가며 실험을 진행하는 것만이 유일한 사고예방대책이었다는 것이 해당 대학원생들의 설명이다. 이처럼 실험실내에 극히 기본적인 안전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곳이 비단 이 학과와 이 대학 뿐만은 아닐 것이다.

대학원생들의 힘든 처지는 실험실 환경 뿐만 아니다. 가정형편이 나은 일부 학생들을 빼놓고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은 20대 중반 이상의 나이로 부모에게 손을 벌리기 쉽지 않을 뿐더러 장학금 혜택이 대학원생의 경우 매우 제한되어 있는 탓이다. 이처럼 안팎으로 취약한 여건에서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는 대학원생들이 그저 대견할 따름이다.

국내 주요 대학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원이 중심이 되는 이른바 연구중심 대학을 지향하고 있다. 대학가에 큰 파문을 몰고온 ‘두뇌한국(Brain Korea)21’사업의 근본 취지도 제대로 된 연구중심 대학을 육성하자는 것이다. 이 사업이 대학원생의 연구여건을 개선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긴 하지만 혜택을 받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 대학 연구활동의 손발에 해당하는 대학원생에게 보다 좋은 연구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경쟁력 강화와 직결되는 문제이자 이번과 같은 참사의 재발을 막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