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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유장희/APEC, 21세기 비전의 場

입력 | 1999-09-20 18:43:00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여느 지역협력체와는 다른 몇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전 회원국 정상이 매년 모이는 점에서 특별하다.

93년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 모인 이래 이번이 일곱번째다. 정상 숫자도 많거니와 회원국들이 세계경제 전체와 세계 총교역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정상들이 매년 모여 포괄적인 의제를 다루므로 APEC 정상회의는 협상의 장이 아니고 오히려 큰 비전을 발굴해 제시하는 ‘선견(先見)의 장’이라고 볼 수 있다. 아태경제 전반의 발전 원칙을 정하고 교역의 기본틀을 다듬어 나가며 이 지역 특유의 가치체계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번 오클랜드 회의에서는 대체로 세가지 원칙을 재확인하고 실천을 위해 박차를 가할 것을 강조했다. 첫째, 강하고 개방된 시장을 이룩해 나감으로써 건전한 성장을 유지할 것을 재확인했다. 94년 보고르에서 채택한 자유화 원칙과 목표 달성을 위해 전력할 것을 재삼 강조했다.

둘째, 경제기술 협력이 주민의 번영과 역내 국가간 발전격차 해소를 위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회원국들은 인적 제도적 능력을 배양하고 과학 및 기술교류, 하부구조 개발 등에 노력할 것을 결의했다. 특히 농촌 인프라 확충, 식품 생산 및 가공분야의 노하우 전파를 실천할 것을 각료들에게 지시했다.

셋째, 세계경제 전반의 안정과 성장을 위한 APEC의 역할을 재확인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새 협상과정(뉴라운드)을 시작할 것을 강력히 지지하였고 세계금융 체계와 관련해 금융안정포럼 설립, 위기방지 및 극복을 위한 새로운 메커니즘 개발 등을 제시했다.

이러한 결의에도 불구하고 APEC의 기본성격에 대해 우려와 회의를 표시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항상 원칙론에만 매달려 있을 뿐 실제 손에 잡히는 변화나 개선 실적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APEC의 실체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본 때문이다. 협상을 하고 그 내용에 발이 묶이며 이를 위반할 때 응징을 당하는 서구식 국제협약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APEC은 너무 관념적이고 느슨한 기구같이 보인다. 그러나 외연내실(外軟內實)이랄까, 이 기구를 통해 불가능을 가능케 했던 일들이 적지 않았다. 중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시장경제나 자유무역을 향해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이는 것이 좋은 예다.

APEC이 유효한 지역협력기구가 되기 위해서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교역 자유화도 중요하지만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에 대비할 수 있는 기능이 구축돼야 한다. 또 회원국들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발전의 신동력(新動力)을 개발하는 데 획기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제안한 ‘생산적 복지’와 ‘지식기반산업 육성’은 APEC이 스스로 존재 가치를 높여 나가는데 크게 기여할 새로운 비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1개국정상이만나는기회에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양자간 또는 삼자간 별도 회의를 현장에서 가지는 형식도 APEC이 가시적으로 기여하는 장점이라고 본다.

유장희(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한국 APEC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