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미술의 장인 이병복(73·한국무대미술가협회 회장). 35년간 극단 ‘자유’ 대표로 의상과 무대 장치를 도맡아 온 ‘억척 어멈’이다. 그의 무대 미술 인생의 진면목이 될만한 공연이 펼쳐진다. 10월2,3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옷굿 ‘살’.
이 연극은 그동안 무대 위에서 죽어간 배역들을 위한 씻김굿. ‘햄릿’ ‘피의 결혼’ ‘억척어멈’ ‘왕자호동’…. 그동안 이병복이 무대에 올렸던 연극에서 배역을 맡았던 연기자들이 총출연한다. 햄릿 오필리어 낙랑공주 등 무대에서 죽어갔던 배역들이 생전의 옷을 다시 입어보고 자신들의 ‘죽음을 재현’함으로써 슬픔을 씻고 세상과 화해한다.
극단 ‘자유’에서 함께 일해 온 윤정섭(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이 연출을 맡았고, ‘음향연구가’ 김벌레가 사람의 숨소리 등 순수한 자연음만으로 소리를 넣는다. 또 박웅 박정자 한영애 손봉숙 등 이 극단 출신 중견 연기자들도 당시의 배역을 맡아 옷굿에 참여한다.
66년 연출가 김정옥과 함께 극단 ‘자유’를 창단했던 이병복은 평생 ‘뒷광대’로 살아왔다.
“배우 할 사람은 많은데 뒷일 할 사람은 없었지. 극단을 이끌어가다보니 ‘뒷일 쟁이’가 돼버렸어.”
그의 무대는 지극히 간결하고 단순하다. 마치 수묵화에서 하얀 바탕 위에 떨어진 먹물 방울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그림이 되듯 여백의 미를 추구한다. 종이와 천, 흙과 지푸라기가 주요 소재.
“누런색 조선 종이가 제일 맘에 들어. 헝겊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요기(妖氣)’가 스며 있거든. 뭔가 신비스럽고, 요상하기도 하고….”
이병복은 이번공연을 평생 해온 작업의 ‘설거지’라고 표현한다. “무대 인생은 영원히 방황하는 것이야.새롭게거듭태어나기 위해 한판 굿을 벌이는 것이지.”
2일 오후 7시,3일 4시. 02―765―5475
〈전승훈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