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긴축을 시사한 전철환(全哲煥) 한국은행총재의 말 한마디에 금융시장이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주가는 폭락했고 금리는 치솟았다.
9월29일 금융시장 상황은 금리정책 결정권을 갖고 있는 중앙은행 총재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한판의 무대. 국제통화기금(IMF)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전총재가 “내년 물가가 불안하다”며 저금리 기조의 변경 가능성을 언급하자 국내금융시장은 크게 술렁댔다.
한은 간부들은 “원론적인 얘기가 확대 해석된 것”이라면서도 “인플레이션이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총재 발언을 뒷받침하는 태도를 취했다.
주인없는 총재실로 투자자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주가 금리 등 각종 지표가 혼조 속에 마감되자 한은은 오후 8시가 넘어 부랴부랴 “현 금리정책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며 2차 해명에 나섰다.
금리인상 가능성은 ‘없었던 일’이 돼버렸지만 시장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한 투자자는 “한쪽에서는 채권기금을 풀어 금리를 안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중앙은행 총수가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불쑥 내뱉는 바람에 ‘도루묵’이 됐다”며 “채권시장안정을 위해 쏟아 부은 2조원이 날아갔다”고 성토했다.
금리결정은 당연히 통화당국의 고유권한이다. 비록 대우사태로 금융시장이 불안하지만 돈이 너무 많이 풀리면 물가 등 여러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논지가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발언의 시기와 방법. 진짜 동기야 어떠했든 취약한 금융시장기반을 고려할 때 신중치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채권딜러들은 “전총재가 구두경고를 통해 시장을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미국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어설프게 흉내 내려다 스타일만 구긴 꼴”이라고 꼬집었다.
박원재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