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배아 복제금지에 대한 시민패널의 합의는 구속력은 없지만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시민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사회가 경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과학기술은 정부와 전문가들의 소관일 뿐 시민들은 수동적 존재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필자도 합의회의에 프로젝트 책임자로 참여했다. 16명의 시민패널로 구성된 ‘생명복제기술 합의회의’는 수개월간 치밀한 준비를 거쳤고 마지막으로 3박4일간 합숙하면서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해 합의안을 도출해 냈다.
합의회의는 우선 인간개체 복제금지는 물론 인간배아 복제도 의료적 이점과 기술적 위험이 불확실한 상태인 만큼 일단 금지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다만 동물복제는 엄격한 관리감독하에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일부 과학계는 수정후 14일 이내의 배아복제 연구를 허용하면 백혈병 당뇨병 치매 파킨슨병 등 난치병 치료와 이식용 장기 개발에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난치병의 치료 효과는 아직까지 검증되지 않았고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
인간생명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시민패널의 결론이다. 미국은 14일 이내의 인간배아 복제 실험을 허용하고 있지만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이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한국의 연구 현실은 어떤가. 인간배아가 아무런 규제 없이 실험되고 버려지는 게 현실이다. 인간생명을 다루는 연구에 생명존중이나 윤리의식이 너무 결여된 것 같다. 복제기술 자체가 절대적 가치가 아닌 만큼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과학이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작용도 많았다. 특히 생명경시 문제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21세기 과학의 사회적 역할을 논의하기 위해 6월말 개최된 세계과학회의에서도 과학과 윤리의 조화가 인류의 미래에 절실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정부는 시민패널의 ‘인간배아 복제금지’ 결론을 정책에 적극 반영함으로써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김환석(국민대교수·과학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