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단 하이난다오(海南島)에 인접한 광둥(廣東)성 잔장(湛江)시. 6월7일 잔장시 세관장이 밀수업자 등 5명과 함께 총살됐다. 자동차 철강 석유 등의 밀수를 묵인해주고 뇌물을 챙긴 죄였다. 잔장시 공산당위원회 서기 천퉁칭(陳同慶)과 ‘자동차밀수대왕’으로 불린 아들 천리성(陳勵生)도 사형(집행은 2년 유예)을 선고받았다.
‘잔장특대안(特大案)’으로 불린 이 사건은 259명의 공직자를 포함해 모두 331명이 관련된 사상최대의 밀수사건. 그러나 중국인들은 이 사건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1월에는 중국 공안부의 제5인자였던 리지저우(李紀周)부부장이 체포됐다. 뇌물을 받고 밀수를 비호해 준 혐의였다. 홍콩언론에 따르면 그는 주룽지(朱鎔基)총리가 지난해 광둥성을 시찰했을 때 주총리가 탄 배에 대포를 쏘아 침몰시키려 했다고 한다. 주총리가 자신의 비위를 알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 이에 놀란 주총리가 그날로 ‘밀수와의 전쟁’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90년대 들어 ‘부패와의 전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는다. 22일 중국최고인민검찰원(대검찰청) 발표에 따르면 97년 이후에 적발된 부정부패만도 10만3000여건. 그 가운데 행정기관이나 사법기관이 관련된 사건도 7600여건에 이른다.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많은 것은 복잡한 규정과 뿌리깊은 관료주의 때문. “무려 20개의 관청을 상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칭다오(靑島)의 한 기업인은 “일의 80%가 정부관리를 상대로 하는 것”이라고 불평한다. 관리들이 일처리를 미루면서 꼬투리를 잡아 뇌물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낡은 제도의 폐단도 심각하다. ‘3무인원(三無人員·신분증 임시거주증 취업증이 없는 사람)’으로 불리는 외지인 단속이 그 사례. 베이징(北京)에 거주하려면 반드시 이들 3가지 증명서를 가져야 한다. 여성은 별도로 건강을 증명하는 혼육증(婚育證)을 가져야 한다.
중국에는 ‘후커우(戶口)’라는 호적제도가 남아 있다. 농촌에서 태어난 사람은 농민이 되고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은 노동자가 된다는 현대판 신분제도. 정부가 과거 도시 노동자들에게 직장을 배치해주기 위해 만든 제도다. 이 때문에 농촌사람이 도시로 나오면 3무인원이 될 수밖에 없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야당의 설립이 금지되는 등 정치적 자유의 제약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 강제로 낙태시키는 등의 인권침해는 서구사회의 끊임없는 시비거리다.
게다가 각종 증명서를 갖췄다 해도 공무원이 증명서를 찢어버리고 단속하는 경우도 있다. 베이징의 한 기업인은 “종업원 한명이 9월초 그렇게 당해 그를 빼내는데 3000위안(약42만원)이나 들었다”고 말했다. 이 돈은 종업원의 4,5개월치 월급에 해당한다. 공권력이 법 위에 있는 것이다.
중국식 표준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 중국은 외국인의 거주지역을 제한한다. 베이징에 사는외국인들은정부가지정한 특정구역에서만 살 수 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국제운전면허증도 중국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거류증을 만들 때 필요한 진단서도 중국 정부가 지정한 중국내 병원에서만 받아야 한다.
중국이 세계의 지도적 국가가 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그렇게 많다. 그 중에서도 부패척결과 인권신장, 법치주의 확립과 글로벌 스탠더드의 도입은 하루가 급하다.
내부적으로도 과제는 많다. 특히 넘치는 실업자는 사회의 안정을 위협할 정도다. 국유기업 등 각종 부문의 개혁으로 올해 들어서만 1000만명이 직장을 잃었다. 앞으로 2,3년안에 1500만명의 실업자가 더 쏟아진다.
배금주의와 향락주의가 퍼지고 점술과 풍수 등 전통 미신도 되살아나고 있다. 그 틈을 비집고 파룬궁(法輪功) 같은 기공단체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런 여러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중국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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