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텔 천리안 유니텔 나우누리 등 국내 4대 PC 통신업체는 6월 일제히 ‘MP3’ 파일 전송서비스를 중단했다. CD를 대체할 ‘차세대 음반’으로까지 불리던 MP3 서비스가 중단된 것은 저작인접권(著作隣接權)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었다.
현행 저작권법은 음악 저작권자(작사자 작곡자) 외에도 저작물의 배포와 전파에 기여한 사람들의 권리를 별도로 보호하기 위해 저작인접권 조항을 두고 있다. 연주자 음반제작자 등이 이에 해당된다.
실제 소비자인 네티즌들이 노래 1곡을 다운받으려면 분당 30∼40원을 부담했다. 이 수익금은 하이텔 등 통신망 운영업체(50%) 저작권협회(11%) 제작자협회(22%) 레코딩뮤지션협회(3%) MP3파일 공급업체(14%) 등이 나누어가졌다.
이런 가운데 음반제작사의 모임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와 연주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한국레코딩뮤지션협회 등 저작인접권 단체들은 부가요금 인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송망 대행업자인 PC통신에 서비스 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발끈한 희성미디어와 골든넷 등 MP3파일 서비스업체들이 다시 PC통신을 상대로 음악파일 전송서비스 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해 8월 “MP3 파일과 관련된 저작권 사용료 분쟁이 있다는 이유로 PC통신 업체들이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중단한 것은 부당하다”는 결정을 받았다.
이같은 법원 결정에도 불구하고 분쟁의 발단이 된 저작인접권 문제는 여전히 미결 상태여서 MP3 서비스가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음원(音源)을 상당수 확보하고 있는 음반사 도레미레코드사가 렛츠뮤직과 합작으로 ‘나눔기술’을 세워 10월부터 MP3 유료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LG 한솔 등 대기업과 신나라레코드 등 음반사들도 MP3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MPEG1, Audio Layer3’를 줄인 MP3는 오디오 파일을 원래 크기의 10분의 1이하로 줄이는 압축기술을 이용해 컴퓨터로 음악 파일을 전송 재생하는 것이다. 오디오 리퀴드나 AT&T 등이 개발한 압축파일도 있지만 MP3는 별도 비용이 들지 않도록 개방돼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저작인접권자에 대한 보상 문제는 현재 법률상 쟁점이 되지 않는다. 미국은 수십년전부터 미국저작권협회(RIAA) 등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을 관리하는 각종 단체가 저작권 사용 제도를 정비했다. 법무법인 태평양 지적소유권팀 황보영(黃寶榮)변호사는 “실제 MP3를 사용하는 음악 전송업자들은 이들 단체에 다양한 형태의 사용료를 지불해 저작인접권의 권리나 보상 문제는 사실상 정리된 상태”라고 말한다. MP3 사업자들은 이들 단체를 통해 쉽게 사용료를 지불하고 라이선스를 취득한다.
최근 미국에서 MP3가 현안으로 불거진 것은 저작권이나 저작인접권의 직접적인 침해가 아니라 MP3 파일의 이용을 쉽게 하는 기기의 개발 및 판매에 따른 간접적인 저작권 침해 여부였다.
RIAA는 98년 10월 미국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사가 ‘리오’라는 휴대용 MP3 파일 재생기를 시장에 내놓자 저작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연방법원에 판매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이 제품은 담배값만한 크기로 테이프나 CD를 갈아 끼울 필요없이 컴퓨터상에서 MP3 파일을 전송받아 언제든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이다. 결과는 다이아몬드사의 승리였다. 연방법원이 리오가 컴퓨터로부터 직접 파일을 다운받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MP3 파일의 재생을 도와주는 컴퓨터 주변기기여서 홈오디오 재생기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리오의 주장을 기각했다.
양측은 최근 디지털 음악 유통과정에서 서로 협조한다는 명분으로 합의해 소송을 종료시켰다. 이같은 화해는 SDMI(Secure Digital Music Initiative)의 적절한 중재가 큰 역할을 했다. 이 협의체는 음반회사 정보통신회사와 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 등 미국을 중심으로 전세계 110여 업체가 모여 지난해 12월 결성됐다.
한국 전문가들은 MP3와 관련해 “하드웨어격인 MP3 플레이어는 최고 수준이지만 소프트웨어와 저작권을 둘러싼 이해 관계의 조정은 후진국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저작권과 관련된 변호사와 변리사들의 모임인 ‘저작권 연구회’ 용덕중이사는 “미국에서는 MP3와 관련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MP3특수’를 누리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계가 미래형 음반산업인 MP3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저작인접권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이다. 정부도 민간단체끼리의 문제인만큼 당사자들이 알아서 조정하라는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인터넷의 특성상 21세기 음반산업은 국경없는 리얼타임의 무제한 경쟁 시대를 맞게 된다. 황변호사는 “정보 및 음반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세계무역기구(WTO)를 무대로 각종 저작권 문제를 제기할 미국의 공세에 대처하기 위해 저작권과 저작인접권 문제의 가닥을 빠른 시일 내에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MP3'의 파급력/네티즌에 폭발적 인기▼
MP3가 차세대 음반시장에 폭풍을 몰고 온다.
세계적인 MP3 전송대행업체인 ‘MP3.com’의 임원 마이클 로버트슨은 “80년대 등장한 세계적인 케이블 음악 전문채널인 MTV처럼 MP3가 21세기 음반산업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인터넷검색업체인 라이코스에서는 검색어 빈도 순위에서 MP3라는 단어가 섹스(sex)와 1위를 다툴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MP3 활성화는 이미 음반을 내고 TV와 콘서트 등의 매체를 통해 홍보하는 기존 음반산업의 풍속도를 크게 바꾸고 있다.
미국의 랩그룹인 ‘퍼블릭 에너미’와 록그룹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인터넷에 곡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조PD가 지난해 PC통신에서의 인기를 발판삼아 스타덤에 올랐다. 올초 신인그룹 ‘O.D.C’는 CD와 MP3 CD롬을 동시에 출시하기도 했다. 방송과 음반이 없이도 인터넷을 통해 데뷔하고 MP3로 음악을 파는 제작자겸 가수가 잇따라 등장할 전망이다.
BMG 유니버설 등 메이저 음반사와 인터넷검색업체, 저작권 관련 단체 사이에서는 MP3를 둘러싼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의회는 지난해 10월 인터넷상에서 저작권 침해를 도와주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 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야후 등 인터넷 검색업체가 막바지 단계에서 “현재 기술력으로 수십만 건에 이르는 해적행위를 모두 확인할 수 없다”며 로비를 펼쳐 법률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저작권 관련단체와 메이저 음반사들은 MP3가 파이의 크기를 키울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임을 인정하면서도 불법복제를 막을 안전장치의 개발을 요구하고 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전문가 한마디▼
최근 번성하는 MP3는 법률적인 측면에서 보면 인터넷을 통한 지적재산권의 거래 및 유통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정당한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은 MP3의 유통은 관련 권리자들의 이익을 해치고 궁극적으로 문화산업의 발달을 저해한다.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음악의 보급과 관계자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설립된 SDMI(Secure Digital Music Initiative)는 최근 디지털 음악파일을 재생시켜주는 휴대용 기기와 관련해 정당하게 저작권료를 지불한 디지털 음악파일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에 관한 표준을 발표했다.
모든 휴대용 디지털 파일 재생기가 이 표준을 채택한다면 불법 MP3는 타격을 받을 것이다. 국경이 없는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지속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한국 기업들도 국제적인 추세에 신속하게 적응해야 한다.
크렉 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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