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일본의 폭압적인 식민통치가 극한으로 치닫던 시기. ‘조선반도’에서 활동하던 일본의 문인은 식민지의 수도 ‘경성’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최근 번역 출간된 다나카 히데미쓰의 ‘취한 배’(유은경 옮김·소화)는 일본인의 눈에 비친 일제 말기의 서울 풍경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일본의 고무회사 경성지점에 근무하는 사카모토는 일본 열도에도 알려진 신진작가. 아시아지역 일제 어용작가들인 ‘대동아문학자회의’의 대표단이 경성에 들르게 되자 사카모토는 환영행사의 회계를 맡는다. 대표단에 밀서를 소지한 인물이 있다는 정보가 알려지면서 치열한 스파이활동이 펼쳐진다.
관심을 끄는 등장인물은 여주인공인 천재시인 노천심. 이화여전 재학 당시부터 영어연극에 출연해 장안의 스타로 등장했다는 이력이나, 친일 선동에 이용되면서 양심의 갈등을 겪는다는 묘사 등은 ‘사슴’의 시인 노천명을 짙게 떠올리게 한다.
반세기 이상이 지난 지금도 눈에 잡힐듯 그려지는 종로 명동 등 서울 풍경이 쉽게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한다. 첩보소설처럼 속도감있게 진행돼 흥미를 더한다.
작가인 다나카는 40년 ‘올림포스의 과일’로 이케타니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고 49년 36세에 자살했다. 30,40년대 고무회사 직원으로 서울에 근무한 사실이나, 조선문인협회 결성에 관여했다는 점 등은 소설 속의 사카모토와 일치한다. 하지만 논픽션의 정도가 어디까지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문학평론가 황종연(동국대 교수)은 “일제하 한국의 지식세계를 체험한 일본작가의 작품이 처음 소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며 “신식민주의 문예비평의 유혹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