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부터 시작된 올해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내년 총선을 의식한 탓인지 대부분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정부의 실정을 지적하고 대안을 내놓아 초반 점수는 일단 ‘합격점’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그러나 아직도 ‘터뜨리고 보자’는 한건주의식 질의가 적지 않았고 일부 행정부처도 불성실한 자료제출과 핵심을 비켜가는 답변을 하는 등 구태(舊態)가 여전히 눈에 띄었다.
○…환경노동위는 국감 첫날 “병신같이 국회의원 비위나 맞춰야 하느냐”는 엄대우(嚴大羽)국립공원관리공단이사장의 발언파동이 있었으나 이후에는 대체로 차분하게 국감을 펼쳤다는 게 중론.
특히 노동부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비정규직의 급격한 증가 등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른 문제점과 실업예산의 낭비 등을 집중적으로 제기, 정부측으로부터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내는 등 성과를 얻었다.
○…정무위는 금융감독위의 자료제출거부로 의원들이 국감을 준비하는데 애를 먹었다. 노동부 국감에서 국민회의 이강희(李康熙)의원이 장관으로부터 “대부분의 자료요구에 대해 ‘추후제출’이라는 답변만 들었다”며 정부측을 성토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달 29일 교육부 국감에서 김덕중(金德中)교육부장관은 ‘두뇌한국(BK)21 특혜의혹’과 ‘교원 수급대책’ 등 핵심사안에 대해 모두 “실무자가 대신 답변토록 하겠다”고 답해 의원들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눈살을 찌푸리게 한 무책임한 발언과 ‘지도부’를 의식한 아부성 발언도 없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정보통신부 국감에서 무소속 홍사덕(洪思德)의원은 “우리 나라에 도입된 전체 감청장비가 일시에 600만∼1200만명을 도청할 수 있다는 수준이라는 얘기를 알만한 데서 들었다”고 주장했다가 장관이 반박하자 슬그머니 주장을 철회하기도 했다.
또 국민회의 정호선(鄭鎬宣)의원은 1일 과학기술부 국감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인데도 장관이 부족한 탓에 과학정책을 가장 잘 다룬 대통령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아부성 발언으로 실소를 자아냈다.
○…국민회의 박상천(朴相千)원내총무는 2일 소속 의원들에게 국감에 임하는 자세를 사례 중심으로 묶은 ‘국감 명심보감’을 제시해 눈길. 박총무는 이날 “상임위 불참 및 이석을 자제하고 휴식시간 중에는 바둑 등 오락을 가능한 한 자제하라”고 당부.
○…이번 국감부터 40개 시민 사회단체로 구성된 ‘국정감사 모니터 시민연대’가 의원들의 국감성적표를 공개하면서 의원들과 시민단체 간에 신경전이 벌어진 것도 얘깃거리.
건설교통위 통일외교통상위 국방위 등 3개 상임위는 아예 시민단체들의 방청을 불허했다. 또 처음으로 성적표가 공개된 보건복지위는 “전문성 없는 모니터요원들의 평가를 납득할 수 없다”면서 시민단체 모니터요원들의 출입을 봉쇄해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색제안도 많았다. 국민회의 정동채(鄭東采)의원은 문화관광위에서 10대 가수의 방송출연 및 팬클럽 결성 제한을 제안했고 산업자원부 감사에서 한나라당 맹형규(孟亨奎) 의원은 대북경수로 사업과 관련해 “비무장지대에 남북 전력운용 공동기구를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