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걔 어려서 안된다고 했지. 그런데 떴잖아, 임마!”
연초 KBS의 한 국장급 PD는 자신이 ‘찜’한 여성 연기자의 캐스팅을 한사코 반대했던 후배 PD를 혼쭐내고 있었다. “PD가 그렇게 ‘선구안’이 없어서야….”
여기서 ‘걔’는 요즘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MBC 주말극 ‘사랑해 당신을’(토일 밤8·00)에서 봉선화로 나오는 탤런트 채림(20). 선생님에게 열렬히 구애하는 당돌한 여고 3년생에서 앞으로는 그 선생과 결혼해 소꿉장난 같은 신혼을 꾸려가는 새색시로 등장한다.
지난달 30일 또다른 출연작인 MBC 시트콤 ‘점프’(월∼금 오후 7·05)촬영장에서 만난 그는 잠시도 쉴 틈이 없어 보였다. 하루 평균 두 시간 밖에 자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자신이 빠지는 장면 촬영시간이 되자 촬영장 옆 소파에 벌렁 드러눕는다. 그러다가도 “채림이 어디갔어!”하는 PD의 호통에 금새 생글생글 웃음을 흘리며 대본을 들고 뛰어 나온다.
“사실 주말극 주연을 처음 맡은 것도 행복한데 결과(시청률)도 좋으니까 더할 나위없이 기쁘죠. 잠이 부족해도 그 때문에 버텨가고 있어요.”
‘사랑해…’ 출연 이전까지만 해도 강하게 남아 있던 ‘징징거리던 막내딸’(MBC ‘짝’·1995∼97년) 이미지가 많이 사라졌다는 지적에 “집에서는 남동생이 있는 장녀”라고 말한다. 실제 생활에서처럼 ‘사랑해…’에서도 장녀로 나온다.
그는 연출자 이진석PD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봉선화 역이 낯설지 않다고 말한다.
사실 ‘사랑해…’를 지켜 본 많은 방송관계자는 “채림을 보면 아역에서 성인 배역으로 이르는 모법답안이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이PD는 “짧은 경력에 비해 다양한 PD와 함께 작업한 것이 여타 기성 연기자와 버금가는 연기력을 갖추게 된 배경”이라고 말한다.
채림은 ‘짝’에서는 멜로와 액션 전문 정세호PD, 올초 SBS ‘카이스트’에서는 시트콤 전문 주병대PD, ‘사랑해…’에서는 트랜디 전문 이진석PD 등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PD와 작업을 함께 해왔다.
이런 배경 덕분에 채림은 섬세한 표정, 한 박자 빠른 순발력과 대본 암기력, 노련한 촬영장 매너 등을 갖추게 됐다. 그도 “지금 생각해보니 시키는 대로만 해도 연기에 필요한 ‘영양분’을 골고루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돌다리 두드리듯’ 조심스레 성인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해온 것도 지금의 채림을 있게 했다.
같은 아역 출신인 이재은이 영화 ‘노랑머리’에서 아역 티를 벗기 위해 옷을 벗은 것과 달리, 그는 아역과 성인역을 번갈아가며 해왔던 것. MBC 단막극 ‘딸의 선택’(97년)에서 학생 신분으로 출산했는가 하면, MBC ‘흐르는 것이 세월뿐이랴’에서는 아버지 뻘되는 스승을 사랑하는 성숙한 여인이 되기도 했다.
채림은 드라마가 끝나면 두 달간 쉬면서 해외 여행을 다녀올 계획. ‘공백’이 두렵지 않느냐고 했더니 “앞으로 계속 연기할텐데 두 달 새 별일 있겠어요”라며 깔깔댄다. 이젠 자신감까지….
주PD 말대로 이젠 ‘물’이 올랐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