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마인드를 가져라.”
18일 나란히 가을철 프로 개편을 실시하는 TV 3사의 편성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군대도 아닌데 무슨 말인가?
그러나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주요 프로의 편성 내용은 일반 기업으로 따지면 ‘A급 기밀’. 개편 발표가 가까워지면 제작 간부가 참석한 간부회의에서는 ‘함구령’이 떨어진다. 그런가 하면 방송사를 취재하는 신문사의 기자도 졸지에 ‘불청객’이 된다.
95년 1월 SBS ‘모래시계’와 같은해 10월 MBC ‘제4공화국’, SBS ‘코리아 게이트’ 등 비슷한 시기에 방영됐던 정치드라마의 편성은 보안이 철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MBC를 거쳐 SBS의 편성책임자를 지냈던 중견 방송인 K씨의 일화는 프로 개편을 둘러싼 신경전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80년대 후반 MBC와 KBS 두 방송사만 있을 때는 개편 발표 일주일 전 쯤 ‘탐색’과 친목을 겸해 KBS 편성책임자와 소주 한 잔 걸치는 게 정기적인 일이었다. 가짜 편성표라는 걸 빤히 알지만 서로 주고 받으면서 고맙다는 인사말까지 건넸는데….”
개편 발표가 가까워지거나, 시청률이 타사에 비해 저조할수록 편성 관계자들은 초조해진다. 그럴수록 경쟁사의 편성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전략도 집요해진다.
방송광고공사를 통한 정보 수집은 효과적인 수법. 광고판매를 위해 개편 내용이 광고공사 담당자들에게 사전에 알려지기 때문이다. 일일이 현장 제작진과 접촉해 ‘각개전투’식으로 정보를 모으는 방법도 자주 사용된다. PD와 섭외담당 등 제작진은 특정 연기자와 MC를 섭외하다 보면 타사 프로에 관한 정보를 쉽게 얻는다. 특히 방송작가들은 ‘보안의식’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편이어서 집중적인 ‘로비’대상.
SBS의 한 관계자는 “치열한 첩보전의 결과로 프로그램의 시간대를 옮기다보면 기본편성표가 개편 발표 때까지 수시로 고쳐져 ‘누더기’ 신세가 되기 일수”라고 말한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