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일요드라마 ‘카이스트’(밤 9·55)가 방영 8개월을 넘기면서 본격적인 ‘아카데미 드라마’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카이스트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와 연결하는데 주력했던 제작진은 이제 산학협동에서 빚어지는 갈등, 미래의 진로를 놓고 고민하는 젊은이의 모습 등 보다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평이다.
3일 방송된 ‘여자와 인간Ⅰ’편도 드라마로서 ‘카이스트’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야기는 카이스트 기계과의 홍일점인 추자현이 전기자동차 프로젝트에서 ‘왕따’ 당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남녀 차별이란 다소 진부한 소재를 산뜻하게 꾸며냈다.
다른 포맷의 드라마에서도 시도됐던 주제지만 제작진은 이를 학교라는 테두리 속에 담으면서도 차별성을 부각한다. 추자현이 1년전 담당교수에게 퇴짜맞은 전기자동차 아이디어가 뒤늦게 남학생을 통해 ‘실현’되는 것을 보고 “여자는 이론에 강하지만 실험에는 약하다고?” 라면서 흥분하는 장면이 그 예.
‘카이스트’가 드라마로 본격적인 시동을 건 것은 한 달여 전. 이후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수업을 강행했던 물리학과 노교수의 이야기를 그린 ‘마지막 강의’편이나 기업 후원의 프로젝트를 실시할 경우 치명적인 환경오염 물질을 만드는 것을 놓고 고민했던 ‘선택’편 등이 방영됐다.
물론 ‘카이스트’는 세 달여 전 방영된 ‘로봇 축구대회’편 등을 통해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시도를 해왔지만 초점은 ‘인간보다는 학생’에 맞춰져 있었다. 당시만 해도 공학에서 사용되는 전문용어에지나치게신경써드라마로서‘카이스트’의매력을반감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던 셈이다.
드라마의 초점이 이민우나 중도 하차한 채림 등 일부 스타급 연기자에서 강성연 이은주 추자현 등 조연급에 골고루 안배된 것도 지금의 ‘카이스트’를 있게 했다. ‘스타시스템’을 과감히 떨쳐낸 것이 결과적으로 ‘카이스트’를 일반 청춘드라마와 구별짓게 한 또다른 ‘경쟁력’이 된 셈이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