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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르포]김태윤/실업률 東獨지역이 西獨지역 두배

입력 | 1999-10-04 19:22:00


독일 수도 베를린 한복판의 브란덴부르크 문. 89년11월9일 밤 베를린 장벽 붕괴의 역사적 현장으로 세계의 안방에 소개된 곳.

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10년, 독일이 통일된지 9년. 이제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에서 ‘분단’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문 앞에 벽돌로 선이 그어져 있을 뿐이다. 장벽이 있던 자리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 브란덴부르크 문은 베를린의 대표적 관광명소가 됐다. 날마다 수많은 관광객과 젊은 연인들이 이 문을 드나든다. 동쪽으로 뻗은 광장에는 핫도그나 터키 음식 케밥을 파는 상인들로 가득하다.

▼베를린장벽 명소로▼

61년 동독 정부는 서베를린을 높이 2.5∼4m, 두께 16㎝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둘러쌌다. 공사기간은 불과 1박2일. 그 때 만들어진 길이 165㎞의 장벽 가운데 이제는 3㎞ 정도가 전시용으로 남아 있다. 담장 주변의 기념품 상점에서는 조약돌 크기의 장벽 조각이 관광객들에게 최고 인기상품으로 팔린다. 장벽에는 조각을 떼기 위해 망치로 쪼아낸 흔적이 어지럽게 남아 있다.

독일 일간지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85%가 통일은 잘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확실히 독일통일은 냉전종식의 상징적 사건이었고 독일의 위업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아직도 통일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돈만이 아니다. 사회적 이질감 해소에는 더욱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단일통화 유로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것도 독일 경제의 부진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실업률은 9월 현재 10%, 올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0.8%. 특히 구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91년 10.3%에서 요즘에는 17.6%로 높아져 구 서독지역(8.5%)의 2배가 넘는다. 취업이 여의치 않은 구 동독 젊은이들은 공산주의나 나치즘에 빠지기도 한다.

구 동서 지역간 경제력 격차도 여전하다. 97년 구 동독지역 중산층 가계의 월평균 소득은 3256마르크. 구 서독 지역(4294마르크)의 76%였다. 요즘 구 동독인들은 구 동독사회를 ‘3분의 2 사회(zweidrittel gesellschaft)’라고 자조한다. 구 동독지역이 경제력에서 구 서독지역의 3분의 2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런 격차는 정서적 갈등으로 이어진다. 독일 여론조사기관인 포르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구 서독인의 20%가 구 동독인이 없어지면 생활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고있다.구 동독인의14%는 옛 사회주의 국가를 동경한다.

▼경제적 격차 커 갈등▼

10일 베를린 시의원 선거에 사회민주당(SPD)후보로 출마한 구 서독 출신 올리버 포겔마이어(30)는 “서독인 중에는 동독인과의 접촉을 피하거나 식민지 지배자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고 지적했다. 구 서독의 한 여성은 “옷차림만 봐도 어느 지역 출신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구 동독 출신 기자 볼프강 주커트(49)는 “통일후 가족법 등 동독의 좋은 제도는 무시되고 서독 제도가 그대로 도입됐다”며 “서독인은 단지 서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출세하고 동독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기류가 ‘오스탈기(ostalgie)’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동쪽을 뜻하는 ‘오스트’와 향수의 ‘노스탤지어’가 합성된 말로 ‘구동독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연민’을 뜻한다.

▼통일후 특혜 사라져▼

갈등은 베를린에서 가장 높다. 9월 현재 베를린 실업률은 전국 실업률을 훨씬 웃도는 15.7%. 통일전 서베를린은 군대징집과 연방세가 면제되는 등 각종 혜택이 주어졌다. 동베를린도 서구 자본주의에 맞서는 ‘최전방’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다른 동독 도시들보다 많은 특혜가 주어졌다.

그러나 통일후 특혜는 사라졌다.한 베를린 시민은 “요즘 베를린에서 건설이 활발하지만 노동자 대부분이 싼 임금의 외국인이어서 실업률 감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독일의 영광을 상징했던 브란덴부르크 문에는 이제 통일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독일은 그 그림자를 세계의 예상보다 빨리 지워나갈 것이다. 세계의 예상을 깨고 통일을 이루었던 것처럼.

김태윤 terre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