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이정순 옮김 / 열림원 / 각 452쪽 / 각권 9000원▼
올해는 보부아르(1908∼1986)의 ‘제2의 성’이 발간된지 꼭 50년이 되는 해. 그러나 이 책에서 맞닥뜨리는 저자의 모습은 ‘전투적 페미니즘 이론가’와는 사뭇 거리가 있다.
“내 사랑? 편지 좀 써 보내줘요, 부탁해요. 제게 이야기해주고, 미소지어주고, 키스해줘요. 사랑해요”
그의 ‘내 사랑’은 실존주의 파트너였던 사르트르가 아니라 한살 연하의 미국인 좌파 소설가 넬슨 앨그렌(1909∼1981). 책 제목처럼 두 사람이 처음 만난 47년부터 파국을 맞은 64년까지 보부아르가 엘그렌에게 보낸 304통의 편지가 실려있다.
미국남자에게 첫눈에 마음을 빼앗기는 마흔살의 보부아르. 그는 ‘냉철한 사상가’이기 이전에 ‘삶을 정열적으로 사랑하고, 여자이지만 또한 남자이고 싶고, 지독하게 탐욕스러우면서 인생의 모든 것을 원하는’ 삶의 예찬론자였다. 그의 내면에선 ‘연인의 빨래를 해주고 싶다’는 감정과 ‘제2의 성’을 쓰는 일이 모순되지 않았다.
연인에게 파리 지식인 사회의 풍경을 시시콜콜 보고한 덕분에 당대 유럽문화에 관한 지적 탐색기로도 손색이 없다. 2권은 내주 발간.
〈정은령기자〉ryung@donga.com